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목동들의 경배: 타데오 바르톨리(Taddeo Bartoli)

by 이종한요한 posted Jan 10,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 - Up Down Comment Print

1409-TdBartolo-Sienne-Pin-500x332.jpg

목동들의 경배 (Adorazione dei pastori :1404)

작가 : 타데오 바르톨리Taddeo Bartoli(1362- 1422)

크기 :목판 유채 :38X 57cm

소재지: 이태리 시에나 피나코테카

 


시에나(Siena)는 역사적으로 피렌체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하는 도시로 전락된 현실이지만 이태리 여러 도시 중에 가장 특징있는 도시의 하나로 자리매김되고 있으며 특히 성미술에 있어선 탁월하면서도 독자적인 경지를 구축하고 있다.

 

이 도시에는 프란치스코 회원으로서 생활 속의 복음 실천을 강조해서 성인이면서 나눔의 경제에 대해 탁월한 식견으로 세계 최초로 자선 은행을 만든 시에나의 베르나르디노 성인을 위시해서 도미니코 회원으로서 대단한 신비가였던 성녀 가타리나의 영향력으로 현실에 와닿는 복음 실천에 도전적이면서 아름다운 성화를 많이 남겼다.

 

특히 비쟌틴 기법과 고틱 기법을 절묘히 조화시켜 시에나 화풍이라는 새로운 화풍을 창출했으며 어느 도시에서도 볼 수 없는 황금 빛 성화를 제작함으로서 기품있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

 

작가는 바로 이 도시에서 태어나 공방 수준의 화실을 만들어 그 이웃 도시들의 성당을 위해 많은 작품을 남겼고 나중에 기량을 인정 받으면서 시에나 시청사에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시에나 출신일 뿐 아니라 당시 시에나 성미술의 경향에 맞는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특히 예수 성탄에 대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을 성당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신심 깊은 신자가 가정에 모시기 위해 제작한 신심화의 일종으로 성탄이 주는 따뜻한 감동을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구약의 다음 내용을 아기 예수님의 탄생과 연관시킴으로 신앙적인 반성과 회심이라는 선교적 차원을 강조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하늘아 들어라 ! 땅아 , 귀를 기울이라 ! _ 주께서 말씀하신다_ 내가 아들들이라고 키웠더니 그들은 도리어 나를 거역하였다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제 주인이 놓아준 구유를 알건만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 . ( 이사야서 1: 2- 3)


1.jpg



성탄화에 등장하는 주제는 아기 예수 마리아와 요셉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처음으로 들은 목동들과 하늘에서 예수 탄생을 경축하는 천사들인데 , 이 작품에선 여관을 구하지 못해 마굿간을 빌어 탄생하신 예수님에게 자기 먹이통을 내어 준 소와 나귀 한 쌍과 목동 두 명이 등장하고 있다.

 

성모님과 성 요셉은 약간 비켜서 자기 아들을 경배온 목동들과 동물들의 의미성이 무었인지를 헤아리며 깊은 표정을 짖고 계신다.

 

여기에 주인공은 당연히 아기 예수님이시다

그런데 짐승들의 여물통에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은 온몸을 붕대로 감고 계신다

이것은 당시의 실재적인 풍습이었으며 골격이 튼튼히 형성되지 않는 연약한 어린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당시 일반 부부들이 취하던 방식이었다.

 

이것은 예수님은 비록 하느님의 아들이셨지만 여느 인간의 허약함을 타고 나셨음을 보이는 것이다

즉 주님께서 인간이 되셨다는 것 중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은 바로 인간의 허약함에 동참하셨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신앙생활을 하면서 너무 완벽하고 강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 ,한 점의 흠도 없는 완벽한 인간이 되고자 하는 것은 이교도적인 영성 태도이며, 예수를 닮은 크리스챤이라면 어느 정도 약점을 일생 지니고 고칠려고 노력하는 여정의 인간이다

 

사도 바울로의 말씀처럼 "나 자신에 대해서는 내 약점밖에 자랑하지 않으렵니다." (고린토2,12:5)  

 

바울로의 이 말씀은 결코 인간적인 공감대 뿐 아니라 크리스챤적인 인간관의 관점에서 약점의 긍정적인 가치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세 답게 이런 허약한 어린이 모습인 주님께는 후광이 쓰여져 있다.

하느님은 완전한 존재이시며 아기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강조하기 위해 후광을 통해 완전성을 표현하고자 한 것은 뿡대를 감고 있는 허약한 모습과는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니지만 이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더 없이 허약한 불완전한 존재로 완전한 하느님을 닮고자 하는 열망으로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하느님의 아들임을 드러내기 위해 비쟌틴 양식의 화려한 금박을 입힌 후광을 쓰고 계신다.

이것이 중세적인 사고 방식이었으며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시기에 어떤 경우라도 인간적인 허약한 면모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에 이런 후광을 준비하게 되었다

 

두 마리의 짐승은 자기들의 밥통에 누워계신 분은 구세주임을 알고 경배하는 모습이다.

자기의 밥통을 빼앗아 탄생하신 그분을 인간들은 알아보지 못하나 이 동물들은 알아보았다는 사실을 통해 크리스챤들의 허약한 신앙을 견책하며 회심을 요쳥하고 있다.

 

두 명의 목동들이 별의 인도로 베틀레헴으로 찾아와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고 있다

간결한 이 배치를 통해 작가는 성탄의 핵심 멧세이지를 정확히 전하고 있다

 

예수님은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해 오셨으며 특히 어려운 처지에 있는 병자 ,가난한 사람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예수님의 삶에선 가장 우선적인 존재였는데, 예수 탄생으로부터 이것이 드러나고 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목동이라는 직책은 참으로 비참한 직업이었다

짐승들을 따라 목초지를 찾아다니다 보니 생활 환경이 더 없이 열악해서 웬만한 젊은이는 선택치 않는 기피성 직업이었다.

 

거기다 짐승들과 오래 지내다 보면 인간적인 교양이나 지식에 있어서도 자연스럽게 뒤떨어짐으로 친구도 없고 주변 사람으로부터 멸시를 받는 당시 사회의 정상인들이 기피하는 하층민이었으며, 목동들은 한마디로 주변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는 변두리 인생이었다

 

탄생하신 주님이 만왕의 왕이라는 말씀은 어디 하나 제외될 사람이 없다는 포괄적 의미만이 아니라 주님 사랑의 우선 순위는 바로 그 사회로부터 소외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더 우선적으로 사랑하신다는 복음의 핵심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목동들이 별의 인도로 아기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목동 편에서 보면 만왕의 왕이신 구세주가 세상에서 기피 인물로 여겨지는 자기들에게 먼저 나타나신 영광의 순간인 셈이다 .

   

초기 르네상스 시기에 살았던 작가는 르네상스 정신에 대한 앞선 이해로 성탄의 예언적 의미성을 제시했다

   

성탄의 의미성은 결코 하느님의 아들이 만왕의 왕으로서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 성탄 멧세이지의 중심이 될 수 없음을 알고 , 그는 만민의 의미성을 당시 사회에서 변두리 인생인 목동들을 포함시키고 자기들의 밥통을 아기 예수에게 내어준 나귀와 소들이 그리스도 탄생의 협력자임을 등장시키면서 만왕의 의미성을 피상적인 차원에서가 아닌 더 저변부로 확대시켰다

 

여기에서는 그리스도가 왕이라는 표현으로는 인간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의미성이 모호하고 어색하며, 자기도 허약한 인간으로서 사회 저변부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야 하는 인간들의 형제로서 오신 그리스도를 알리고자 했다

   

목동이나 아기 예수나 허약한 면에서 마찬가지이다.

목동들이 가축들과 함께 살고 있는 은신처인 베틀레헴 주변의 동굴이나 소와 나귀가 바라보고 있는 말구유에 탄생하는 아기 예수님이나 너무나 비슷한 처지에 있다.

 

작가는 예수님이 누워 계신 말구유를 의도적으로 목동들이 거처하던 베틀레헴 동굴 안에 배치함으로서 하느님의 아들과 목동들의 관계성을 더 친밀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예수님이 인간으로 오심은 바로 인간의 처지에 깊히 동참하신 것임을 동굴과 말구유를 한 공간에 배치한 것으로 표현했다

 

예수의 탄생이 만왕의 왕이라는 표현은 이처럼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했을 때 의미가 드러남을 강조하고 있다.

   

작가는 이런 면에서 그 시대 정서에서도 대단한 예언성을 표현했다

예술가는 신학자와 달리 자신의 표현이 주위의 인정을 받지 못할 때도 있지만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기에 경직된 신학이나 교리가 표현하지 못한 신앙의 신선함을 표현한 것을 역사에 자주 볼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성미술의 작가들이 교회에 생기를 더하는 면으로 볼 수 있다예수님의 삶이 예언적이었고 예언이란 점쟁이처럼 미래를 알아보는게 아니라 본질을 알리는 것이라면 예술은 신학이나 어떤 학문 보다 더 예언성을 표현하고 있다.

 

신학이나 교리가 신앙의 내용을 너무 정확히 표현할려다 보면 경직되거나 아니면 시대 착오적인 표현으로 남기 쉬운데, 이것은 현대인들이 교회를 떠나거나 교회에 들어오기를 주저하는 주요 원인이라는 면에서 볼 때 예술가들이 해야 할 현대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좀 뒷 시대 작가가 살았던 시에나의 이웃 도시인 피렌체에서 르네상스 작가들은 성탄화의 제작에 있어 작가와 전혀 다른 표현을 사용했다. 어떤 작가는 성탄화의 등장 인물에 당시 동방교회와의 일치를 위해 피렌체 공의회를 유치하면서까지 실세를 과시했던 메디치 집안 가족들을 등장시켜 동방 박사의 경배를 그릴 만큼 상류사회 지향의 의식구조를 표현한 것에 비기면 이 작품은 참으로 그리스도 우리와 꼭 같은 인간으로 오심에 대한 성서적인 의미를 더 잘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jpg


요셉과 성모님은 목동과 다른 곁에 제겨져서 아들 탄생의 장면을 응시하고 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한 이“ (루카 1: 28)였으며 , “요셉은 의로운 사람”(마태오 1: 19)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해 특별한 표현을 했다. 두분은 우선 큼직한 금빛 후광을 통해 비쟌틴 표현대로 이들의 존재성이 범상한 사람임을 알리고 있다

 

성모님의 진청색 옷에 있는 별은 비쟌틴 성화에서 동정의 상징이었으며, 요셉은그가 교회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낳은 아버지가 아닌 키운 아버지임을 강조하기 위해 평범한 남자이면서 성모님의 동정성을 강조하기 위해 늙은이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표현되던 성모님과 성 요셉의 표현이며 작가도 이런 전통에서 벗어나지 않는 모습의 아기 예수님의 부모를 표현했다.

 

갈수록 성탄이 상업성을 띄면서 흥청거리고 교회 역시 이런 사회속에 사는 신자들의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성탄을 장엄함과 화려함이라는 관점의 표현에 더 비중을 두는게 아니냐는 성찰을 해야 할 시기에 이 작품은 참으로 우리가 잊기 쉽고 놓치기 쉬운 성탄의 중요한 면을 정확히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누군가의 사랑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오시며 이들은 주님을 만남으로서 목동들처럼 새로운 삶의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탄 때가 되면 교회 지도자들이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 곳을 찾아가 미사를 봉헌하고 선물을 전달하는 것은 바로 이 작품처럼 하느님 나라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누구인지를 알리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고 있는 두명의 목동은 교회와 크리스챤들이 마음에 새겨야 할 중요한 사건과 사명을 알리고 있다.

 

천사들이 하늘로 떠나가자 , 목자들은 서로 말하였다.

베틀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일러주신 그일,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봅시다.......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 루카 2: 15 , 20)

 

사회적으로 도저히 정상인의 취급이나 대우를 받을 수 없었던 목동들이 주님을 만남으로서 구세주를 세상에 알리는 선교사의 역할을 맡음으로서 음지가 양지가 되는 새로움이 시작된다.

 

예수님의 성탄은 낡은 가치관이 새로운 가치관에 정복당하는 통쾌한 역사의 여정을 보이고 있다

 

작가는 성탄의 상업성이 번지면서 성탄의 진면모를 잊은 의미없는 축제로 변질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이 작품을 통해 샛별처럼 찬란한 천지개벽의 벅찬 기쁨을 전하고 있다.

 

1409-TdBartolo-Sienne-Pin-500x332.jpg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