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을 바꾼다.
내가 믿는 하느님 나라는 신과 인간이 한 곳에 공존하는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나라는 사후에 오게 될 나라라기보다 현재에서 발견되는 나라라고 믿고 있으며
그 구성원들은 죄인들인 우리다.
우리는 여전히 상처 입은 채로 부족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고,
자만심과 우월감 속에서 깨달아야 할 것이 많은 존재임에도
우리는 우리들의 일상적인 관계 안에 발견되는 그 나라에서
아버지의 자비로운 시선을 느끼고 살아간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바리사이와 세리를 비교해서 말씀하신다.
바리사이는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옳은 것을 말하고 행동했음에도
하느님께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바리사이가 아닌 세리였다고 복음은 전하고 있다.
반면에 세리는 자기가 한 옳은 일은 생각조차 안 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구한다.
아버지의 자비에 의존하지 않고 ‘지키고’ ‘바치는’ 자신의 의로움을 생각하면
그 같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라고 생각한다.
기도하는 사람이 청하는 것들은 상대방을 바꾸도록 청한다.
남편이 기도하는 것은 자신의 의도대로 아내가 바뀌는 것이며
아내가 기도하는 것은 남편이 바뀌도록 청한다.
부모는 자녀들이 바뀌기를 기도하고 자녀는 부모가 바뀌기를 기도한다.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바뀌기를 기도하고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바뀌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관계 안에서 서로를 바뀌도록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참으로 아버지의 자비 안에서 기도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힘을 빌려 자신의 욕구를 채우거나 우월을 과시하려고 하지 않는다.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을 바꾼다.
자신의 내적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수련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은 아버지의 자비로운 시선 아래 자신을 두기 때문에
자신의 선행이 그분에게서 왔다는 사실을 알고
그분께 돌려드리려는 마음으로 관계를 맺는다.
우리가 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주시는 분께 돌려드리는 일이다.
돌려드리는 일은 수평적 관계 안에서 이루어진다.
선을 행하되 흔적을 지우는 방법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