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연중 33주간 수요일-그렇다면 하느님은 어떠십니까?

by 당쇠 posted Nov 18, 200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주님은 오늘 복음의 비유를 통해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일까?

오늘 비유는 우선,
하느님 재산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가르치려하심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 우리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하느님은 왜 당신 재산을 우리에게 맡기실까?
당신이 직접 관리하시지 않고 왜 우리에게 맡기실까?
하느님께서 당신 재산을 우리에게 맡기심은
당신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우리를 위한 것일까?
그리고 이것 말고도 우리는 또 다른 질문을 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재산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비유에서 말하는 미나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오늘 비유를 액면 그대로 이해하면
주님은 한 미나를 주시고 우리에게 돈을 벌라고 요구하시는 분이고
그 결과를 나중에 따지시는 분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정말 당신의 재산을 증식하기 위해
우리 인간에게 돈을 빌려주시는 분이실까?
오늘 비유의 세 번째 사람은 하느님을 이런 분으로 이해했습니다.
우리를 상대로 악착같이 돈벌이를 하시는 분.
능력은 조금 주시면서 많은 성과를 요구하시는 지독한 분.
은총은 베풀지 않고 우리의 봉사와 희생만 요구하시는 분.

그러나 이 세 번째 사람을 주님께서 나무라시는 것으로 보아
하느님은 이런 분이 아니십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왜 우리에게 당신의 미나를 맡기시고,
미나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 생각에 하느님은 우리를 위해 당신의 미나를 맡기시는데,
미나는 다른 것이 아니라 당신의 은총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에 우리에게 은총을 주시는 분이고,
그러므로 그 은총은 우리에 대한 사랑의 표시이며
사랑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주신 사랑은 우리를 흡족케 할 뿐 아니라
마치 유산균이 저절로 증식하듯 커지고 불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을 은총으로 받아들이고 사랑을 할 경우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랑이 은총이 아니라
원하지도 않는데 맡겨진 짐이라면
하느님의 사랑은 그 풍요와 활력과 찬란함을 잃고
나의 가장 음침한 뒷방에 처리 곤란한 짐짝처럼 잠들어 있을 것입니다.
유산균으로 치면 그 균이 다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다.
사랑이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사랑이 얼마나 좋은지 맛보지 않으시렵니까?
사랑이 없는 것보다 사랑이 있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미워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훨씬 좋지 않습니까?
사랑할 수 없는 사람보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아주 단순하고 유쾌하고 쉽습니다.
그런데 왜 사랑을 그렇게 짐스럽게 생각하고,
왜 그렇게 사랑하기 어려워하고 힘들어합니까?

나를 더 사랑하기 때문일까요?
사랑보다 더 좋은 것이 있기 때문일까요?
한 번도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일까요?
사랑 받았지만 진정한 사랑은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일까요?

그럴 수 있습니다.
인간인 내가 그럴 수 있고
인간인 나의 부모와 형제와 친구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어떠십니까?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 ?
    홈페이지 쥬라블 2009.11.18 22:53:06
    사랑.... 관상으로 이끄는 '길'입니다.
    소중한 나눔 감사 합니다.
  • ?
    홈페이지 요셉 2009.11.18 22:53:06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영적인 존재로 인간조건상 하느님의 사랑을 감지하기에
    어려움이 있기에 이러한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을 부모의 사랑을 통해 알아들으라고
    우리에게 부모를 선물하셨다는 걸 어딘가에서 읽은 기억이 나네요.
    부모의 사랑은 이처럼 이 세상 어느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지고한 사랑이라 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면
    부모는 그 책임과 소명의식을 갖고 하느님께서 맡기신
    은총과 사랑이 자신으로 하여금 찢어진 사랑, 꾸겨진 사랑으로
    전달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며,

    내가 부모를 잘 만나 사랑을 받았다면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한
    우월감이나 자기만족이 아니라 ‘내가 아니고 너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라는 마음으로 다가가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고,
    진정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그렇게 사랑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랑의 결핍으로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상대로 하여금,
    “사랑이 얼마나 좋은지 맛보지 않으시렵니까?
    사랑이 없는 것보다 사랑이 있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미워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훨씬 좋지 않습니까?
    사랑할 수 없는 사람보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하지 않습니까?“
    라고 말 할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 제 자신이여 할 것입니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말하고
    형제애를 말함으로써 마음이 편치 못함을 느낄 때가 많았음을 고백하면서
    프란치스칸으로서 사랑을 전하는 평화의 사도가 되도록 마음을 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