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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축일-행복 타령

by 당쇠 posted Dec 0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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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무엇이 의무라고 하면 싫어도 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바오로 사도가 얘기하는 복음 선포의 의무도 이런 것인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으면 불행해지기 때문에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싫어도 억지로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 것일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봅니다.
굴렁쇠의 본질은 구르는 것입니다.
굴렁쇠는 구르지 않으면 넘어지고
넘어져 있으면 굴렁쇠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굴렁쇠가 구르는 것은 본질이 요구하는 것입니다.
굴렁쇠인 한에는 굴러야하는 것이 본질이 요구하는
굴렁쇠의 의무이고 굴렁쇠다움입니다.

사랑의 본질도 그러합니다.
사랑은 사랑을 해야 하고
사랑을 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을 하는 것은 다른 누가 강요해서 억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 자신이 강요하는 것이고
사랑할 때 사랑은 사랑답습니다.

복음도 그러합니다.
복음 선포를 바꿔 말하면 행복 타령이라고 할 수 있는데
누가 강요한다고 행복 타령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했다 하면 행복 타령인 사람은 행복하지 않고선 그리 할 수 없습니다.
행복한 사람, 그것도 넘치도록 행복한 사람은 다른 누가 아니라
행복함 바로 그것이 행복 타령을 하도록 강요합니다.

그러니 복음 선포는 그 자체로 의무이고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본질 상실의 불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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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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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뭉게구름 2009.12.03 17:30:44
    "사랑 했으므로 행복 하였네라 "

    어느시인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였습니다.

    프란치스칸이 되라는 엄마의 간곡한 사랑을
    엄마가 이 세상을 떠나신 후에나 그 사랑에 응답을 드렸습니다.

    엄마의 사랑으로 알게 된
    우리 사부 성 프란치스코을 존경하여 사랑하게 되니
    정동 가는 길이 마냥 행복 하기 만 합니다.
  • ?
    홈페이지 요셉 2009.12.03 17:30:44
    그렇습니다.
    사랑은 그 사람이 그 사람일 수 있는,
    그래서 그 사람이 어떤 사림인가? 하는 것은
    그의 사랑에 대한 태도를 보고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하느님께서 사랑이신것처럼.....

    요즘 처럼 사랑이 고통이다 싶으면 사람을 바꾸어서
    사랑하고 그것이 마치 능력처럼 보이는 현실에서는
    씨가 먹히지 않는 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그래서 기다림의 고통을 희망으로 수놓아 가며 사는가 봅니다.
    " 그러니 복음 선포는 그 자체로 의무이고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본질 상실의 불행입니다."
    고맙습니다.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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