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버려 두기
“어린이를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오늘의 복음은 저를 많이 반성케 합니다.
저도 어린이를 그냥 놔두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전에는 특히 더 그러했습니다.
전에는 엄마들이 아이들을 내버려두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했습니다.
자기 아이가 분위기를 얼마나 난장판으로 만드는지 무신경할 때,
무엇보다도 자기 아이 기죽지 않게 하기 위해 내버려둘 때,
그래서 전례나 강의를 망칠 때 아주 불쾌하게 생각했지요.
제가 처음 본당에 나가 예비자 교육을 할 때는 이런 일이 있었지요.
예비자 교리를 처음 하는 날인데
그 교리반에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떠들고 뛰어다녀
어떻게 강의를 했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강의를 끝내고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다음번에는 아이를 데리고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그렇게 얘기하고 수도원에 들어왔는데 오늘 복음이 생각나며
제가 너무 잘못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아이가 당신께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하셨는데
저는 아이가 오지 못하게 하였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 엄마는 데리고 오고 싶어서 데리고 왔겠습니까?
봐줄 사람이 없어서 데리고 왔을 텐데 데리고 오지 말라고 했으니
그 때문에 그 엄마가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 미사 중에 저의 잘못을 신자들에게 얘기하고
아이를 데려와도 좋으니 꼭 나오라고 전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어른 중심적이고,
더 심하게는 자기중심적입니다.
어린이는 어린이다워야 하는데 어른들처럼 조용하기를 요구하고,
어린이는 마음껏 놀게 해야 하는데 어른 욕심 때문에
놀지도 못하고 이것저것 배워야 하고,
어린이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어야 하는데
어린이를 자기가 원하는 틀에 가두려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아이한테는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아이에 대한 사랑이 없다고 할 수 없지만
힘이 없으니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폭력이 사랑에 숨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힘없는 아이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폭력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폭력은 어린이에게만 폭력인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도 폭력을 당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오늘 주님 말씀처럼 어린이들의 나라인데,
어린이들이 폭력을 당하니 하느님 나라도 폭력을 당하는 겁니다.
아이들이 주님께 가는 것을 제자들이 가로 막듯이
하느님께서 직접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고
하느님께서 친히 아이들에게 복 주시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하느님과 아이들 사이를 어른들이 가로 막음으로써
하느님 뜻에 맞는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 입맛에 맞는 아이가 되게 합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 막는 사람이 내가 아닌지.
나의 자녀가 하느님 자녀가 되는데 내가 걸림돌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저의 경우, 저의 수련자들이 주님의 가르침을 직접 받는데
제가 가르친다고 하는 것이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