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의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가장 사랑한 여인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이 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쓸데없는 짓인지 모르지만 사랑 비교를 해보았습니다.
베드로의 사랑과 막달라 마리아의 사랑을 비교하고
베베타니아의 마리아의 사랑과 막달라 마리아의 사랑의 비교 말입니다.
예수님 주변에 여인이 많았고 특히 루카복음은 예수님을 따른 여인들을
따로 언급하고 있고 요한복음도 예수님을 사랑했거나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여인들을 많이 언급하고 편이지요.
그런데 누가 예수님을 더 사랑했을까?
누가 예수님의 사랑을 더 받았을까?
우리는 이런 차원에서 비교를 하기 좋아하지요.
심리학적으로는 사랑과 관련하여 남녀의 비교를 하곤 합니다.
일과 사랑이 인간 모두에게 중요한 것인데
남자는 여자보다 일을 더 중요시하고
여자는 남자보다 사랑을 더 중요시한다고 하지요.
그래서일까 주님의 수난과 부활의 현장에서
남자 제자들은 여자 제자들보다 초라하고 가련합니다.
사랑해서 주님을 따른 것이 아니라
자기 욕망의 실현을 위해서 주님을 따른 것이 분명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은 제자조차도 막달라 마리아와 비교하면
사랑은 막달라 마리아보다 더 많이 받았는지 모르지만
더 많이 주님을 사랑하였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무덤에서 주님의 시신이 없는 것을 보고서도
베드로와 사랑받던 제자는 시신을 찾아 나서지 않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울며 애타게 찾고 드디어 만납니다.
이렇게 해서 주님 부활의 첫 번째 증인 자리를 뺏깁니다.
주님의 제자들, 창피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베타니아의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의 사랑 비교는 어떻습니까?
베타니아의 마리아는 한 번도 주님을 만나러 가거나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지 않았고 주님께서 그의 집을 방문하시면 앉아서 만났고,
방문 때에도 시중들지 않고 공주처럼 말씀만 들어 마르타의 불평을 샀지요.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베타니아의 마리아를 찾아가시고
공주처럼 있는 그가 좋은 몫을 택했다고 두둔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주님께 그는 그 비싼 향유를 발라드리는데
이때도 비난하는 시몬에게 마리아의 행위를 두둔하시며
그것은 당신께 대한 마리아의 순수한 사랑이라고 하십니다.
이에 비해 막달라 마리아는 열두 제자와 함께 주님을 따라다녔고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함께 하였으며 주님께서 돌아가시고
시신이 사라진 뒤에도 울며 찾아다니다 마침내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으로 만납니다.
그러니 이렇게 적극적으로 찾아 나선 막달라 마리아가
가만히 앉아서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만 한 베타니아 마리아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였고 주님도 그를 더 사랑하셨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겉으로만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으나 이 경우
사랑의 우열을 따져서는 안 되고, 서로 다른 사랑이라고 해야겠지요.
연인이나 이웃 간에는 사랑이 필요하거나 원하는 사람에게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사랑을 쏟아주는 것이 더 큰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엄마에게 아이와 하느님께 인간과 같이 기우는 사랑이나 내리사랑의
경우는 수동태의 사랑도 능동적인 사랑 못지않게 큰 사랑이지요.
아이의 사랑은 엄마의 사랑을 원하기만 해도 되고 받기만 해도 됩니다.
그러나 주님 부활의 증인이 되려면 어른처럼 사랑해야겠지요.
주님도 찾아 나서고 이웃도 찾아 나서는 사랑말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얼마나 사랑할까 나는?)
http://www.ofmkorea.org/76766
14년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부활과 회개)
http://www.ofmkorea.org/61582
13년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울게 하소서)
http://www.ofmkorea.org/52359
10년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http://www.ofmkorea.org/3863
09년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나는 주님을 찾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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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년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잃어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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