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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일-바닥과 바탕

by 당쇠 posted Jan 0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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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인천에 있는 양로원 신년 미사에 다녀왔습니다.
돌아오는 전철.
많은 사람이 타고 내리고,
이러저러한 사람이 마주쳐졌습니다.
한동안 그들을 보고 있다가
‘수도자가 뭐 이사람저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은가’하는 생각이 들어
시선을 깔고 바닥을 보았습니다.

평생 처음 바닥을 바닥으로 비라봤습니다.
이것이 바닥이구나 하고 처음 느꼈습니다.
지저분한 발자국들이 우선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무시당하거나
적어도 관심 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고,
심지어는 짓밟히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바닥을 이렇게 무시하고 짓밟는데
이 바닥이 없으면 우리가 어떻게 서 있을 것이며
이 바닥이 없으면 어떻게 편안하게 노닥거릴 수 있을 것인가?
그러면서 깨달은 것이 바닥이 바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바닥과 바탕.
바닥이 우리 삶의 바탕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바닥이 싫습니다.
무시당하고 짓밟히는 바닥이 좋을 리 없지요.
그래서 바닥이 되려고 하지 않고
바닥으로 내려가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바닥으로 내려가도
마치 주식이나 경기가 바닥을 쳐야 올라가듯이
바닥을 치고 올라가기를 희망하며 바닥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바닥에 머물지 못하면 바탕이 되지 못합니다
바닥을 치고 올라갈 것으로 임시적이고 기회적으로만 받아들이면
바닥은 바탕이 되지 못합니다.
바닥은 바닥이어야 함을 받아들이어야 하고
바닥이 바닥임을 사랑해야만 바닥일 수도 바탕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의 신발의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한 세례자 요한은
바닥으로 내려가고 바닥이 되기를 거부하지 않았기에
주님께서 구원사업을 펴실 수 있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늘 위에서 놀기만 원했고
한 번도 바닥다운 바닥까지 내려간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사랑하겠노라고 다짐하고
사랑하려고 그렇게 애를 써도
형제들 삶의 바탕이 될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제 이를 알게 됐지만 그렇다고
제 스스로 정말 바닥까지 내려가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아프지만 주님께서 바닥으로 내려가게 하셔야 내려갈 것 같습니다.
올해 그 아픈 은총을 기다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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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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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하늘 2010.01.06 08:04:19
    네. 그 바닥에서, 더 내려갈 곳이 없음에... 그분께서 함께 하심을 절절히 깨닫습니다... 고맙습니다 신부님^^
  • ?
    홈페이지 요셉 2010.01.06 08:04:19
    그렇습니다.

    이런 마음이 어찌 당쇠 신부님만의 마음이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한 까닭에 우리 모두는
    “아프지만 주님께서 바닥으로 내려가게 하셔야 내려갈 것 같습니다.
    올해 그 아픈 은총을 기다려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
    홈페이지 갈릴리 호수 2010.01.06 08:04:19
    신부님 감사합니다. 신부님의 말씀을 하루의 자양분으로 삼고 살고 있습니다.
    바닥, 누구나 싫어합니다. 하지만 가난한 마음은 그 바닥에서 나옴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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