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화의 성찰
고통을 피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는 웃는 것이다.
나는 슬프게 살고 싶지 않다.
명랑하기를 원하고 삶을 즐기고 싶다.
관계가 실패로 돌아간 이유를
자신에게서 발견하고 성찰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라도 고통을 회피하려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하느님의 말씀까지 자신에 맞도록 해석하여
자신의 정당성을 말하고 싶어 한다.
비난과 걱정, 고통에서 자신을 보호하려고 즐거움 뒤에 숨는다.
영혼의 고통스러운 심연에서 탈출하기 위하여
약간의 행복을 통해 고통을 무마하려는 마음으로
낙천적이고 아름답고 훌륭하다는 이미지를 보이려고
쾌활하고 기뻐하며 작은 것들에 놀라기도 한다.
괴로운 일은 뒤로 미루거나 무시하고
명분과 구실이 없거나 회피할 수 없으면 몹시 초조해한다.
여러 가지 일에 손을 대고 조종과 통제를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만든다.
거절당할까 하는 두려움과 걱정이 타인에게 상처를 줄 때가 많다.
숙제 같은 기도와 희생을 요구하는 일들에 짓눌리고 지쳐서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내면의 붕괴로 인하여 위기는 극에 달하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준다는 좋은 명분 때문에
남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는 이면을 부정하고 억압하는
자신의 이상주의가 만든 감옥,
관계가 실패로 돌아간 원인을 합리화시킴으로써 만든 감옥이다.
명랑함과 쾌활함이 과장되어 나타나는 곳에는
기쁨, 쾌락, 재미에 대한 과도한 욕구가 있으며
두려움을 기만하는 동기가 숨어있다.
더 많은 일에 착수하여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은 칭찬을 받고,
더 아름다운 집에서 살고, 더 많이 소유하고자 한다.
그들은 자신의 수선스러움을 꿰뚫어 보고
자신의 고통을 진지하게 여기는 누군가를 갈망하지만,
남에게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실패로 끝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고통의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을 찾기 시작한다.
고통을 없애려고 술을 마시거나 중독성 있는 대체를 찾으며,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여행에 대한 열망이 무척 강하게 나타난다.
위험한 내면을 관리하는 능력은
여백을 만드는 일이다.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거나 대폭으로 줄이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것을 다 하려고 에너지를 소비하지 말아야 한다.
아버지의 품에서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
허용하고 놓아주는 자유를 자신에게 주는 것,
실수해도 되고, 넘어져도 된다는 믿음과
내려놓고 내려가는 가난과 겸손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배우지 못하면
감옥에서 탈출하기란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