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혼인예복은?
“친구여, 그대는 혼인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오늘 복음말씀은 하늘나라를 혼인잔치에 비유한 것입니다.
조금 엉뚱한 짓인지 모르지만 오늘 잔칫집 임금의 입장에서
초대된 사람 중 고약한 사람의 순서를 한 번 매겨봤습니다.
당연히 정식 초대되었는데도 오지 않은 사람들, 그 중에서도
와주기를 재촉한다고 종들을 죽인 사람이 제일 고약하겠고,
다음으로는 장사나 밭갈이 같은 자기 Business 때문에
그 중요한 초대에 아랑곳하지 않은 사람이 고약할 것입니다.
이들이 임금의 분노를 사 벌 받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문제는 길거리에서 불려간 사람들이고,
불려간 사람이 혼인예복을 안 입었다고 벌 받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길거리에서 불려갔다면 얼떨결에 불려갔을 거고
얼떨결에 불려갔다면 혼인예복을 미처 갖추지 못한 거 당연한데
어떻게 그런 이유로 벌을 준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얼떨결에 불려갔다면 그 사람이 예복을 입지 않은 것은 당연하고
그런데도 예복을 입지 않았다고 벌을 받는 것은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기에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길거리에서 불려간 사람은
얼떨결에 불려간 “아무나”가 아니고 특별히 초대된 사람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주님께서 이 비유를 들려준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풀립니다.
이 비유의 청자는 이스라엘 사람들,
그중에서도 수석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입니다.
그러니까 정식으로 초대된 이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고,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도 수석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입니다.
그렇다면 길거리에서 불려간 사람들은 이방인들이지요.
임금의 백성이 아닌 이방인들,
말하자면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초대 손님이 된 겁니다.
이 비유의 초점은 하느님께 뽑힌 이스라엘 백성이
받은 복을 걷어 차 이방인들이 그 복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에 대한 질책이 그 안에 담겨 있고,
이방인들이 그 덕에 복을 받게 된다는 덕담이 담겨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혼인예복이 무엇일지 생각하게 됩니다.
정말 무엇이 입고가야 할 우리의 혼인예복이겠습니까?
자격이 없는데도 초대된 것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
잔치에 가는 것이니 기쁘고 즐거워하는 마음?
혼인잔치에 가는 것이니 축복의 마음?
예, 이런 것들도 갖추어야 할 것들입니다.
마지못해 가거나 억지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그리고 즐겁게 가야하고,
잔치에 초대됐으니 실컷 먹고 즐겨야겠다는 자기잇속이 아니라
임금과 신랑신부를 진심으로 축복하는 마음으로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역시 제일 중요한 혼인예복은 사랑,
임금님과 결혼하는 아드님에 대한 사랑의 혼인예복이 아닐까요?
하느님 나라 잔치에 우리가 아니 가서는 절대로 아니 되겠지만
가더라도 얼떨결에 가거나
마지못해 가서는 아니 되고,
억지로 가거나 사랑 없이 가는 것도 절대로 아니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