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과 독서는 우리가 사순시기에 행하는 단식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사순시기를 시작하며 커피와 술, 담배와 같은 기호 식품을 끊거나 지나치게 애착하고 있는 것을 포기하겠다는 다짐을 세우곤 합니다. 또 하느님의 정의를 실천하고 더욱더 가까이 그리스도의 고통의 신비를 묵상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우리 자신을 위한 것 즉 의무를 다하고 있다는 만족감이나, 성덕이 높다는 칭찬을 들으려고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거나,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마음의 안정감을 얻기 위한 것이거나, 자만과 허영을 부추기고 있는 일들이라면 우리는 주님이 반기시는 단식이 아닌 속죄와 보속을 강요하는 율법의 껍데기에만 매여 있는 것이고, 주님의 십자가를 함께 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당신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으니 당신도 내게 무엇인가를 주시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며 십자가에 또 다른 짐을 올려놓고 흥정을 하는 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순시기를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행여나 주님께로 향했던 좋은 의도가 나의 만족이라는 위선으로 변질되려고 하지는 않는지 다시금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독서는 올바른 단식이 「제 머리를 골풀처럼 숙이고 자루옷과 먼지를 깔고 눕고 단식한다면서 다투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불의한 결박을 풀어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사부님도 「여러 가지 기도와 신심행사에 열중하고 육신의 많은 극기와 고행을 하면서도, 자기에게 해가 될 듯한 말 한 마디만 듣거나, 혹은 어떤 것을 빼앗기기만 하면 발끈하여 내내 흥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하시며 진정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뺨을 치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권고하십니다.
올바른 단식은 “무엇을 하지 않겠다!”는 부정적인 접근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더 열심히 하겠다.”라는 긍정적인 접근이 함께 이루어질 때 비로소 제자리를 찾게 될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는 주님의 말씀은 배고픈 이가 행복하다는 말씀이 아니기에 우리는 음식물의 절제와 애착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히려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 내가 누군가에 의해 지탱되어지고 있음을 깨닫고 더욱더 사랑하겠다는 마음,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왜곡되어 드러난 삶의 모습에 대해서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개선하겠다고 다짐하는 마음을 통해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고자 하시는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할 것입니다.
더 깊이 더 천천히 나의 삶을 바라보며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 안에서 그분의 사랑과 자비를 청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분명하게 바라보고,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고 느낄 때의 충만함과 그리스도와 함께 있지 않다고 느낄 때의 그분을 향한 목마름을 동시에 바라보게 될 때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느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의 의미를 더 가까이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지금 그분과 함께 혼인 잔치의 기쁨 중에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독서는 올바른 단식이 「제 머리를 골풀처럼 숙이고 자루옷과 먼지를 깔고 눕고 단식한다면서 다투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불의한 결박을 풀어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사부님도 「여러 가지 기도와 신심행사에 열중하고 육신의 많은 극기와 고행을 하면서도, 자기에게 해가 될 듯한 말 한 마디만 듣거나, 혹은 어떤 것을 빼앗기기만 하면 발끈하여 내내 흥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하시며 진정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뺨을 치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권고하십니다.
올바른 단식은 “무엇을 하지 않겠다!”는 부정적인 접근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더 열심히 하겠다.”라는 긍정적인 접근이 함께 이루어질 때 비로소 제자리를 찾게 될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는 주님의 말씀은 배고픈 이가 행복하다는 말씀이 아니기에 우리는 음식물의 절제와 애착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히려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 내가 누군가에 의해 지탱되어지고 있음을 깨닫고 더욱더 사랑하겠다는 마음,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왜곡되어 드러난 삶의 모습에 대해서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개선하겠다고 다짐하는 마음을 통해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고자 하시는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할 것입니다.
더 깊이 더 천천히 나의 삶을 바라보며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 안에서 그분의 사랑과 자비를 청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분명하게 바라보고,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고 느낄 때의 충만함과 그리스도와 함께 있지 않다고 느낄 때의 그분을 향한 목마름을 동시에 바라보게 될 때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느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의 의미를 더 가까이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지금 그분과 함께 혼인 잔치의 기쁨 중에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하느님을, 이웃을
더 사랑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