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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 1주일-하느님 나라의 승리자가 되기 위하여

by 당쇠 posted Feb 2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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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첫 번째 주일은 유혹받으시는 예수님에 대해 얘기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악령의 유혹을 받으시는 겁니다.
그런데 유혹의 구조를 잘 살펴보면
악령이 유혹하지만 사실은 예수께서 유혹을 받으시는 겁니다.
왜 그런 고 하면 성령의 인도로 일부로 광야에 가신 것이고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 유혹자를 만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종종 유혹자가 유혹을 해서 유혹을 당했다고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이 유혹을 당하고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었다고 얘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무책임과 합리화가 어디 있습니다.
유혹을 한다고 다 유혹을 당할 것입니까?
내 인생의 주도권은 어디에 있습니까?
당하고 살지 맙시다.
왜 당하고만 삽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유혹을 당하지 말고 유혹을 받도록 하고
유혹을 받을 때 유혹자를 탓하지 말고 자기를 탓하도록 합시다.

유혹은
유혹자의 문제가 아니라 유혹을 받는 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돈이 궁한 사람이나 탐욕이 있는 사람에게 뇌물이 유혹이 되고
배가 고픈 사람이나 식탐이 있는 사람에게 맛있는 음식이 유혹이 되지
가난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나 배부른 사람에게는
뇌물도 맛있는 음식도 유혹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유혹의 첫 번째 덫은 결핍의 고통입니다.
한 두 끼 굶고서는 도둑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흘 굶으면 도둑 안 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십 일을 굶고서 유혹을 받으십니다.
우리는 사흘만 굶어도 유혹에 넘어가 도둑질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가득 차셨기에
사십 일을 굶으셔도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십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가득 차 요르단 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러므로 사십 일을 굶는 고통을 겪어도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우리도 성령으로 가득 차야만 합니다.

유혹의 두 번째 덫은 탐욕, 욕심입니다.
궁핍하지 않아도 욕심이 있을 때 뇌물 유혹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원의로 가득 차 성적인 욕구가 아예 없으면
아무리 예쁜 여자가 와서 유혹을 해도 유혹이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역시 성령으로 가득 찬 분이셨기에,
그래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이 당신의 뜻이었기에
세상의 권세와 영광이 유혹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유혹을 받으신 것입니까?
유혹이 성립되지 않는데 어찌 유혹을 받으신 것입니까?

성서 전체를 보면
배불리 먹고 이 세상에서 권세와 영광을 누리는 것을 가지고
악령이 예수님을 유혹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할 때와 마치실 때
악령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돌이 빵이 되게 하고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유혹합니다.
인간이 되어 오신 하느님에게 신성을 증명해 보이라는 것이며
신적 능력을 발휘하여 이 세상에서 승리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악령에게 힘을 보이고 싶은 유혹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철저히 인간의 아들로 무력하게 죽습니다.
그럼으로써 신성은 고통을 피하기 위해 발휘되고
세상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 이용되어서 안 됨을 보여주십니다.
고통은 피하고 세상에서는 승리자가 되고 싶은 인간에게
하느님 나라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의 고통과 패배를 두려워하지도 말고 피하지도 말라고
하느님의 아드님이 사람의 아들이 되어 손수 모범을 보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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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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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요셉 2010.02.21 10:01:12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성서 어디에도 자신을 위해 기적을 행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처럼 훌륭한 그리스도인은 자신만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 것 일 겁니다.
    자신을 위해 이기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기도 지향의 첫 번째며 단골 메뉴였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지난날의 철없던 제 자신을 바라봅니다.

    삶이 주는 고통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함으로써 성숙한다는
    쉽지는 않지만 해볼 만한 도전임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며
    사순절을 살아가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죄만 빼고 나와 동일한 인간조건에서 시작하셨다는
    그 이유가 조건이 같다면 나도 한 번 해볼 수 있는 용기가
    마음으로부터 솟아오르기 때문이고 바로 성령의 힘이 아닐까 싶네요.
    고맙습니다.
  • ?
    홈페이지 마니또 2010.02.21 10:01:12
    신부님의 은혜로운 말씀을 묵상하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수난을 앞두고 제자들에 대한 걱정과
    육신의 관념을 지닌 인간으로서 죽음의 순간을 수 없이 떠올리며
    두려워했을 모습을 그려봅니다. 그리고 하늘에 모든 운명을 맡기고,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경천순천(敬天順天)을 묵상합니다.

    “남은 구원하더니, 자기는 구원 못하는군.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봐..” 수치와 조롱을 받으신 예수님..
    조롱받고 죽는 것, 하느님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 능력이라고..
    오직 하느님을 증명하는 데만 쓰여지는 것이 능력이라 말씀하십니다.

    조금이라도 자존심이 상하거나 욕을 먹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나의 목적과 나 자신을 증명하는데만 많은 힘을 쏟아버리고
    정작 필요한 싸움에는 힘이 바닥나 버리는 저에게 분명히 가르쳐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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