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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나누기

연중 제23주일

by 김명겸요한 posted Sep 0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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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두 가지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죄를 지은 형제를 타이르는 것과
여럿이 함께 하느님께 청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서로 연결되지 않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언뜻 보면
'둘이나 셋'이라는 표현을
둘 다 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둘이나 셋'이라는 표현으로
공동체의 중요성을 드러냅니다.
증언이나 청원이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공동체가 항상 좋기만 한지에 대해서
우리는 가끔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합니다.
집단 이기주의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하나의 공동체가 다른 공동체에게
피해를 주는 모습도 경험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공동체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하나로 일치된 모습을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으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 모습은 때로는 가장 위험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둘이나 셋이 함께 하고 있지만,
그들의 생각과 행동이 온전히 똑같다는 것입니다.
말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서로 똑같아진 둘이나 셋은
더 이상 둘이나 셋이 아닙니다.
즉 하나인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공동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혼자서는 공동체를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이 인정되지 않고
존중되지 않는 일치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공동체의 모습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둘이나 셋의 생각을 모은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도저히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대화를 통해 일치를 이루었다면,
그것보다 더 대단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일치된 증언은 큰 힘을 가지며,
일치된 청원을 하느님께서도 들어주십니다.

하지만 그 결과를 위해서
힘으로 일치를 만들어간다면,
겉으로는 하나가 된 것처럼 보이지만,
각자가 지닌 서로 다른 힘을
함께 모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일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지고 맙니다.

나와 다른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저 사람만 없으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머리속에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치가 가진 대단함을 얻기 위해
생각을 모으는 힘든 과정을 거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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