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를 가져다주는 믿음
복음에 나오는 치유 이야기를 살펴보면
예수께서는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으로 특징 지어지기를 한사코 거부하시고
누군가를 치유하실 때 그의 믿음을 바라보신다.
“네 믿음이 너를 구했다. 평안히 가라.”(마태 9,22 마르코 5,34 루가8,48)
사람들은 마술적인 신앙을 선호한다.
그런 신앙은 기적을 하든 않든 간에 모든 책임을 하느님께 돌린다.
성숙한 믿음은 참여와 협력으로 변화되기를 원한다.
예수께서는 치유 받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되도록 일깨워 주셨지
의존하게 만들지 않으셨다.
그들 안에 내적인 그리스도를 신뢰할 용기를 주어
창조 때 받은 선성으로부터 힘을 얻도록 일깨워 주셨다.
자신을 비추는 거울 없이 아무도 혼자서 하느님 사랑으로부터 시작할 수 없다.
부활하신 주님의 영께서는 하느님과 연결된 이들로 하여금
선물로 주어진 만남과 관계 안에서
자신 안에 숨겨진 창조적인 생명의 에너지를 발견하도록 돕는다.
하느님 사랑에 빠진 이들이 비추는 강력한 힘이
잠자던 선성을 깨우고 사랑의 하느님과 연결 되도록 돕는다.
내면에서 발견한 힘은 경외심을 갖고 관계를 만들어 간다.
이러한 흐름 속에 발견한 놀라운 하느님의 자비는 경탄하게 하고
안으로만 사용하던 에너지를 밖으로 관계 속에서 사용하기 시작한다.
나로 하여금 사랑하게 만든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아버지 자비의 품을 아는 이들이 안내하는 곳이
삼위일체의 관계적 사랑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참여로써 변화되며 변화는 일상의 관계 안에서 또 다른 변화로
다른 이들을 비추는 선의 확산으로 하느님 나라를 확장시킨다.
나를 비추는 그들의 타고난 선함, 내적인 아름다움, 취약하지만 철저한 정직성,
관대한 마음이 나를 중심으로 만들던 자아에서 벗어나도록 해 주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사랑을 시작한 게 아니라 거울처럼 비추는 그들의 선이
나를 보게 만들고 감옥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인생의 실패는 관계의 실패다.
은총은 선의 흐름이 나를 통하여 흘러가도록 할 때 은총으로 남는다.
죄는 이 흐름을 막음으로 관계를 악화시킨다.
하느님으로부터 받는 사랑을 모르는 이들이 저지르는 죄다.
믿음에 물을 대주는 성령께서
너를 통하여 나를 비추는 곳에 치유가 있다.
믿음에 물을 대주는 성령께서
나를 통하여 너를 비추는 곳에 치유가 있다.
통제를 잃고 통제를 발견하는 자유
믿음은 관계 안에서 나를 잃고 너를 발견한다.
참여로써 발견하는 하느님 나라
그 나라가 바로 우리 가운데 있다니…!
“네 믿음이 너를 고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