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 얘기를 많이 해서 죄송한데 오늘도 제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한 20년 전까지만 해도 제가 고백성사 볼 때
제일 많이 본 죄는 저의 독선과 위선에 대한 것입니다.
독선이란 나 혼자만 선하다는 뜻이지만 더 정확히 얘기하면
이것은 다른 사람은 선하지 않고 나만 선하다는 뜻이지요.
이것과 비교할 때 위선이란 조금 다른 뜻이 있는데
그렇게 선하지 않지만 선한 모습으로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자 함입니다.
결국 독선이나 위선은 다 다른 사람 앞에서 또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나는 너보다 선하다고 하거나 선하지 않을 경우 거짓으로라도
선한 사람으로 보이고 그렇게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는 것입니다.
이러던 제가 요즘 고백성사를 볼 때는
독선이나 위선의 죄를 거의 고백하지 않고 있고,
제가 그런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오늘 위선에 대해 묵상하다가
요즘 제가 이 죄들을 고백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왜 이렇게 되었을까,
제가 이 죄들을 더 이상 짓지 않게 되었기 때문일까 생각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게 독선이나 위선이 전혀 없을 리 있겠습니까?
그래서 생각을 더 해보니 독선이나 위선이 다른 사람 앞에 있을 때
짓는 죄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하게 성찰해야 할 것은
하느님 앞에 있지 않을 때 짓는 죄 그러니까
하느님 앞에 있지 않고 사람들 앞에 있을 때 짓는 죄라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하느님 앞에 있으면 절대로 독선할 수 없고,
오히려 홀로 선하신 하느님 앞에서 선이 하나도 없는
저를 고백할 수밖에 없으며
저를 샅샅이 보시는 하느님 앞에서 선을 겉꾸밈 할 수도 없겠지요.
그러므로 제가 독선과 위선의 죄를 요즘 고백치 않음은
죄에 대해 제가 무뎌진 측면도 있지만 긍정적으로 저를 이해하면
제가 조금씩, 조금씩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하느님 앞으로 이동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 있으면서도 하느님 선 앞에 있기도 하지만
하느님 사랑 앞에 서 있다는 느낌이 더 들기에
이 죄들을 고백치 않는 것 같습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앞서 얘기했듯이 제가 하느님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 선 앞에 있다면
저의 독선과 위선을 더 아파하고,
저의 독선과 위선이 전보다 작아도 더 크게 뉘우쳤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하느님 사랑 앞에 있다고 느끼기에 뻔뻔해진 겁니다.
하느님 사랑을 믿으면 뻔뻔해지는 면이 미성숙한 사람에게 있잖아요?
하느님은 저를 사랑하시는 분이시기에 너그럽게 봐주실 거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저 자신을 합리화하고 심지어는 저를 미화하기까지 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회칠한 무덤 같다고도 하시고,
하느님 사랑과 의를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나무라시는데 저는
그래도 하느님 사랑 앞에 있고,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려고 한다고 말입니다.
이런 말이 있는지 모르지만 이러한 제가
이제는 위선僞善하는 것이 아니라 위애僞愛하는 것이요,
이러한 저는 위선자에다가 위애자이기까지 한 것이지요.
그러나 저는 또 저를 합리화합니다.
제가 아무리 지금보다 위선과 위애를 하지 않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저는 위선자와 위애자자가 아닐 수 없으니
그저 이를 겸손히 인정하고 자비를 빌 뿐이라고.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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