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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저는 사제들 피정 지도를 했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사제들 피정이 피정 중 제일 지도하기 힘듭니다.

신학이나 영성이나 신앙생활을 저보다 전반적으로 더 많이 알고,

더 훌륭한 분들이기에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격이기 때문이지요.

 

그러기에 신학이나 영성 강의가 아니라 같은 사제로서

사는 얘기를 많이 하게 되고 그것도 실패한 얘기나 잘못한 얘기를 하며

신부님들은 저처럼 그러지 마시라는 식으로 강의가 아닌 나눔을 하지요.

 

그 나눔 중에서 제가 주님을 부르는 것에 대한 얘기도 나눴는데

저의 얘기를 하니 신부님들께서 많이 놀라시는 거였습니다.

제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지요.

 

저는 '주님'이라는 소리가 30대 중반까지도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수도원에서 20년 가까이 살고, 신부가 되고도

주님 소리가 잘 나오지 않고 그래서 신학을 얘기할 때는

''이라는 매우 객관적인 호칭을 썼고 기도할 때는

'하느님'이라는 역시 객관적인 호칭을 쓰곤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주 하느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하느님으로만,

'주님, 저의 기도를' 대신 '하느님, 저의 기도를'. 기도하곤 했지요.

 

그것은 하느님을 하느님이라는 면에서는 인정하지만

나의 주인님이라는 면에서는 마음에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끔 개신교 방송에서 목사님들이 통성 기도 중에 '주님, 주님' 하는

것을 보면 '주님'이라는 말을 너무 남발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가식적이라거나 낯 간지럽다는 느낌이 들어서 역겨울 정도였습니다.

 

그것은 또한 내가 나의 주인이고 싶었고,

실제로 나의 주인은 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하느님을 나의 주인이라고 인정하는 순간 나는 그분의 종이 되고,

내 뜻대로 하고 싶은데 이제 내 뜻대로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이러던 제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하느님이 저의 주인이심을

인정치 않을 수 없었지요.

 

갈릴래아 호수의 최고의 어부였건만 밤새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시몬이

예수님의 명으로 그물을 치자 엄청나게 많은 고기를 잡는 기적을 체험하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고 자기는 죄인이라고 했던,

바로 그 변화가 제게도 일어났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가 얼마나 교만했는지

그 죄를 인정케 되었고 하느님을 주님으로 인정케 된 것입니다.

 

내가 나의 주인이고 싶지만 내 생명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잖아요?

내 마음대로 자살할 수 있다고요?

그러면 내 생명을 내 마음대로 연장할 수 있나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은총과 사랑을 거부할 수 있는 것,

죄를 짓는 것뿐이고 그래서 죽는 것뿐입니다.

 

은총을 입는 것과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하느님 뜻을 따를 때뿐,

다시 말해서 하느님이 나의 주인이고 생명의 주인이심을 인정할 때뿐입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 뜻/명령 대로 되는 나라입니다.

하느님 나라 백성은 하느님 뜻/명령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뜻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 백성이 아니고,

아무리 주님을 불러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하느님을 주님으로 인정한 제가 요즘 어떤 때 건성으로 부릅니다.

입으로는 천연덕스럽게 '주님, 주님'하지만 하느님 뜻을 실천치 않습니다.


하느님을 주님으로 부르지 않을 수 없어 입으로는 주님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아직도 제 뜻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인데 그래도 차츰

나아지는 것을 위안삼는 요즈음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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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image
    홈페이지 깻잎 2020.12.03 08:36:51
    공감, 공감합니다, 저만 그런게 아니라 위로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 profile image
    홈페이지 성체순례자 2020.12.03 05:37:21
    신부님의 말씀을 같은 전례시기에는 어떻게 묵상하고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 profile image
    홈페이지 성체순례자 2020.12.03 05:36:43
    19년 대림 제1주간 목요일
    (입술의 종에서 속속들이 종으로)
    http://www.ofmkorea.org/295121

    18년 대림 제1주간 목요일
    (거창한 일이 아니라 소소한 사랑을)
    http://www.ofmkorea.org/172019

    17년 대림 제1주간 목요일
    (어디로 들어가려는가, 나는?)
    http://www.ofmkorea.org/115181

    16년 대림 제1주간 목요일
    (마음의 사랑이 신체화하면)
    http://www.ofmkorea.org/96309

    14년 대림 제1주간 목요일
    (무너진 하느님의 집)
    http://www.ofmkorea.org/72587

    13년 대림 제1주간 목요일
    (주님을 부르지 않겠습니다.)
    http://www.ofmkorea.org/58272

    12년 대림 제1주간 목요일
    (사랑 낙담)
    http://www.ofmkorea.org/44533

    11년 대림 제1주간 목요일
    (뱉지 말고 삼켜라!)
    http://www.ofmkorea.org/5407

    10년 대림 제1주간 목요일
    (주가 종과 객으로 바뀌지 말아야!)
    http://www.ofmkorea.org/4626

    08년 대림 제1주간 목요일
    (말씀 맛들이기)
    http://www.ofmkorea.org/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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