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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의 시간에 돌아보는 나의 성소

by 이마르첼리노M posted Dec 3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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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의 시간에 돌아보는 나의 성소

 

행동하지 않는 아들과 행동하는 아들의 비유 (마태 21,28-31)

예수께서는 포도원에 가서 일하겠다고 대답만 하고 행동하지 않은 아들과

처음엔 하지 않겠다고 대답했으나 나중에 실천했던 아들에 대해서

행동하는 아들을 더 좋아한다고 하셨다.

 

행동이 말보다 중요하다.

바른말과 바른 생각이 현재의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진리를 우상으로 만들기 쉽다.

진리 자체를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진리는 사랑을 위한 행동이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진리는 당신의 삶이었다.

예수께서는 인생의 과정에서 고난에 처해있는 이들에게

치유와 돌봄을 베풀었던 것은 행동하는 사랑이었다.

섬김의 윤리, 비폭력적 윤리는 용서하는 사랑이었다.

 

강하고 안정되고 통제하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통제하는 관계를 만든다.

자신이 통제하는 세상을 추구하는 사람은 용서하는 사랑보다

예배(바치는 것)와 도덕적 성취(법을 잘 지키는 것) 만을 추구한다.

상호 관계 속에서 자신이 실천하고 행동해야 하는 일들은 하느님께 미루고

자신은 기도와 돈과 희생을 바치고 계명을 잘 지키기 위하여 에너지를 소모한다.

 

복을 받기 위해 사는가?

상을 받기 위해 사는가?

벌을 받지 않기 위해 사는가?

예수님을 따르고, 닮고, 변화되기 위해 사는가?

 

진리는 언제나 관계적 사랑으로 드러난다.

우리의 몸과 우리의 가슴,

물리적 세계와 주변의 세상과 씨름하지 않는 이론과 사상은 공허한 진리다.

 

인류에게 지금 필요한 진리는

구체적이며 우리의 실생활과 연관성이 있는 진리다.

우리가 실제로 본받을 수 있고 인간적 기준을 세워주는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너와 나의 관계적 현실에 대답할 수 있는 진리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 사이

예수님의 말씀과 실천적 삶을 살아야 할 사람은 너와 나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마르코 6,37)

용서하는 사랑으로 행동하라고 너와 나를 부르셨다.

그것이 아니라면 진리가 아니다.

 

송년의 시간이 왔다.

전염병과 지진과 자연재해 앞에 속수무책의 인간들이

서로를 통제하려는 갈등 속에 재앙을 본다.

 

땅과 연결되지 않은 하느님을 믿으며

피와 살을 가진 삶과 연결되지 않고

믿음과 이해를 작은 상자 속에 가둔 채

행동하지 않고 말만 앞세우는 이들 가운데에서

나의 성소를 돌아보았다.

 

2020, 12, 31. 송년의 시간에 

이기남 마르첼리노 마리아 형제 O.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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