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앞에서
인류가 직면한 고통들
재난과 질병과 사고
신체적 정신적 물리적 고통
외로움과 고독과 영적 고통
죄를 뒤집어씌울 희생양을 찾는 사람들
분열과 비난의 현장에서 들리는 소리
탓하는 소리
헐뜯는 소리
의심의 눈초리
십자가 없는 부활만 강조하며
신비적인 부분만 즐기면서
고통에 대해선 무관심한 사람들
도덕적 성취와 금욕으로 예수의 십자가를
자신의 고통으로 감당하려고 애쓰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기쁨은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고통을 숨기고 회피하고 부정하면서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이 살면서 기쁜 척하는 사람들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로한답시고
속을 뒤집어놓고 더 큰 고통을 만드는 사람들
자비는 가장 중요한 하느님의 계시다.
삼위일체의 하느님에 대한 믿음의 핵심이다.
하느님의 자비가 왜곡된 곳에는 형벌만 남는다.
그것이 지옥이다.
인과응보적 정의관으로 현재의 고통을
하느님께서 주시는 벌이라고 믿는 사람들
하느님의 정의가 징계로 끝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우리가 만든 '화를 내시는 아버지'의 모습 때문에
하느님의 선하심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먼저 일하신다.
내적인 정의와 조화로운 균형과 관계의 회복을 위해
긍정적인 변화를 통해 피조물들을 의롭게 만들어 가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의 자비로 먼저 손을 내미시는 사랑을 알아차리고
돌려드리려는 마음으로 응답할 뿐이다.
고통을 통해 얻은 기쁨이 진정한 기쁨이다.
기쁨에는 고통의 흔적이 있다.
고통을 건너뛰는 기쁨은 없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이다.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겐 말이 필요 없다.
말로 위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함께 있어 주는 것뿐이다.
내가 고통 중에 있을 때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혼자라는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아무도 곁에 없다는 느낌이 들 때
고통의 한복판에 있을 때
하느님의 자비와 선하심을 전혀 느낄 수 없을 때
죄에 대한 형벌이라는 느낌이 들 때
하느님의 자비에 몸을 맡길 수 있을까?
멈추고 돌아보는 회상하는 자비
자비의 흔적이 고통의 흔적보다 클 때 희망이 있다.
고통 앞에서
자비의 흔적을 회상하는 신앙
견딜 수 있는 희망이 거기에 있다.
우주를 돌보시는 아버지의 자비를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