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평화를 빕니다.
오늘 복음말씀에서 율법학자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몸같이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계명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율법학자는 가장 큰 계명을 실천하는 것이 희생제물과 번제물보다 낮다고 답변을 합니다.
오늘의 복음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듣게 될 때에는 가장 큰 두계명이 희생제물과 번제물보다 더 낮고 더 크고 더 완전한 행위라는 생각을 하게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의 말씀을 좀 더 의미깊게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희생제물과 번제물의 의미는 하느님께 바쳐지는 거룩한 제사이면서 동시에 지은죄를 속죄하는 속죄제물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희생제물과 번제물은 하느님께 합당하게 바쳐지는 거룩한 행위인 동시에 더 큰 의미를 두고서 바라보았을 때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행위와 같은 것입니다.
가장 큰 두 계명을 지키고 실천할 때 희생제물과 번제물을 바쳐질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반면에 희생제물과 번제물을 바쳐지는 행위 그 자체가 가장 큰 두 계명을 지키고 실천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가장 큰 두 계명이 희생제물과 번제물보다 더 낮고, 희생제물과 번제물을 바쳐지는 것이 가장 큰 계명을 실천하는 것보다 더 못한 행위가 아닌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복음에서 희생제물과 번제물이 가장 큰 두 계명보다 못하다는 말씀을 하신 이유는 희생제물과 번제물을 봉헌할때 마음과 정성없이 형식적으로 봉헌되는 진심이 없는 행위를 비판하는 말씀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안에서 접하게 되는 전례행위에서도 오늘의 복음말씀을 적용시킨다면 미사를 봉헌하고 기도를 하느님께 바쳐지는 것이 마음과 정성없이 진심없는 마음으로 행하게 될 때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미사를 봉헌하고 기도를 하는것 보다 더 낮다 라고 말할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큰 두 계명과 미사 봉헌 과 기도는 별개의 것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속해 있는 것처럼, 오늘의 복음 말씀에서도 가장 큰 두 계명과 희생제물과 번제물은 서로 구분되어서 더 낮고 못하고의 구분이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속해 있는 하나의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서 봉헌을 하고 기도를 할때 참된 기쁨과 평화가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잡을 것이고 그 기쁨과 평화는 우리 안에 자리잡고 있는 하늘나라와도 같은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전례와 기도생활 안에서 마음을 다해서 봉헌하기 보다는 형식적으로 봉헌되는 기도생활이 되지 않기 위해 먼저 저 자신부터 반성해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