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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7주 토요일-사랑의 집중성

by 당쇠 posted May 2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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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베드로가 돌아서서 보니,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이 제자가 이 일들을 증언하고 기록한 사람이다.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요한복음은 주님께서 사랑하신 두 제자,
그들도 주님을 사랑한 두 제자의 얘기로 끝을 맺습니다.
둘 다 주님의 사랑을 받고
둘 다 주님을 사랑하였지만
그 인생은 달랐고
삶의 종언도 달랐습니다.

한 사람, 베드로는 극적이고 격정적인 사랑을 하였고
다른 이, 요한은 정적이고 관조적인 사랑을 하였습니다.
한 사람, 베드로는 사랑으로 주님의 양떼를 책임지었고
다른 이, 요한은 사랑으로 주님에 대한 증언을 후세에 남겼습니다.

지금까지 저의 인생은 책임의 연속이었습니다.
일찍부터 많은 책임, 큰 책임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그 책임이 버겁다는 느낌이 들 때는
자주 ‘왜 나는 이렇게 책임을 떠안고 살아야 하나!’하고
혼자 속으로 푸념을 하곤 하였습니다.
같은 나이의 다른 형제는 지금도 공부를 하고,
또 다른 형제는 지 좋아하는 일만을 하며 룰루랄라 하며 사는데
나는 왜 다른 사람의 짐까지 지는 삶을 사나 생각하곤 했습니다.

힘들 때는 이렇게 푸념을 하다가도 가만히 저를 들여다보면
두 가지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는 이런 푸념이 나올 때는 사랑이 떨어졌을 때입니다.
하느님 사랑이건 이웃 사랑이건 사랑이 떨어질 때이고
사랑의 根氣가 떨어졌을 때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렇게 푸념을 하지만
사실은 제가 좋아서 하는 것이거나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저이기에 하는 것입니다.
의미 있는 일이 요청이 있거나 필요성이 보이면
저는 제가 해야 할 일처럼 생각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요한과 같은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지랖 넓게 여기저기 나서지 않습니다.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처럼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머뭅니다.
배타적으로 주님께 집중을 하고 머뭅니다.
일부로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랑의 집중성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주님 안으로 깊이 들어갔고
심연에서 물줄기를 만나듯 주님 안에서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하느님을 우리에게 증언 하였습니다.
그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 표시는
주님께 대한 증언을 우리에게 남기는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사랑하여
다른 누구보다도 깊이 알게 된 주님을
다른 사람도 깊이 알고 사랑하게 되도록 사랑을 증언하는 것,
이것이 요한의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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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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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뭉게구름 2010.05.22 23:20:52
    '사랑의 집중성"
    이것도 나의 의지가 아니며

    사랑도 주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지금 여기에서 사랑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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