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오늘 복음을 듣게 되면서 세가지의 질문을 묵상할수가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엠마오로 가는길에 만난 예수님을 왜 알아보지 못했는가? 두번째는 왜 예수님께서 빵을 떼었을때 알아보게 되었는가? 세번째는 그들이 눈이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자 왜 사라지셨는가?입니다. 가장먼저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빵을 떼셨을때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것은 세가지의 뜻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첫번째는 성사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사안에 현존하시고 사제의 인격을 통해서 인격안에 현존하십니다. 그래서 성사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눈이 열여 알아보라는 의미인것이고 두번째는 교회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알아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둘이상 모인곳에 나도 함께 있겠다라고 말씀하셨고, 사도 바오로도 다마스커스로 가는길에 예수님께서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라고 말씀하신 것같이 빵을 떼고 나누는 교회공동체안에 예수님께서 현존하신다는 의미가 있고 눈이 열여 알아보라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빵을 뗀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과 피를 나누는 것인데 바로 사랑의 실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할때 우리는 사랑이신 하느님의 현존안에 머무르고 그분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눈이 열려 알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의미 예수님께서 사라지셨다는 것은 2000년전 나자렛사람 예수님은 사라지셨고 우리가 보는 눈으로는 더이상 볼수는 없지만 위에서 언급한 세가지의 뜻안에서 늘 우리와 함께 현존하시고 살아계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사라지셨다고 할지라도 사라지신것이 아니라 성사와 교회그리고 사랑안에서 믿음의 눈이 열려 알아보라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엠마오로 가는길에 만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는 믿음으로 보고 듣지 않으면 아무리 예수님이 옆에서 같이 걸어가고 대화를 하고 성경말씀을 빌어서 당신자신에 대해서 말을 해도 우리는 절대 눈이 열리지 않아서 알아볼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신앙과 믿음의 눈으로 보고 들으라는 의미인것입니다.
전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저의 믿음과 신앙에 대해서 되돌아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저의 부족함을 하느님께 내어 맡기며 하루하루 믿음안에서 살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하느님께 청해봅니다.
첫번째는 성사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사안에 현존하시고 사제의 인격을 통해서 인격안에 현존하십니다. 그래서 성사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눈이 열여 알아보라는 의미인것이고 두번째는 교회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알아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둘이상 모인곳에 나도 함께 있겠다라고 말씀하셨고, 사도 바오로도 다마스커스로 가는길에 예수님께서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라고 말씀하신 것같이 빵을 떼고 나누는 교회공동체안에 예수님께서 현존하신다는 의미가 있고 눈이 열여 알아보라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빵을 뗀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과 피를 나누는 것인데 바로 사랑의 실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할때 우리는 사랑이신 하느님의 현존안에 머무르고 그분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눈이 열려 알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의미 예수님께서 사라지셨다는 것은 2000년전 나자렛사람 예수님은 사라지셨고 우리가 보는 눈으로는 더이상 볼수는 없지만 위에서 언급한 세가지의 뜻안에서 늘 우리와 함께 현존하시고 살아계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사라지셨다고 할지라도 사라지신것이 아니라 성사와 교회그리고 사랑안에서 믿음의 눈이 열려 알아보라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엠마오로 가는길에 만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는 믿음으로 보고 듣지 않으면 아무리 예수님이 옆에서 같이 걸어가고 대화를 하고 성경말씀을 빌어서 당신자신에 대해서 말을 해도 우리는 절대 눈이 열리지 않아서 알아볼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신앙과 믿음의 눈으로 보고 들으라는 의미인것입니다.
전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저의 믿음과 신앙에 대해서 되돌아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저의 부족함을 하느님께 내어 맡기며 하루하루 믿음안에서 살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하느님께 청해봅니다.
O.F.M 김기환 베드로 마리아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