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4일 연중 제14주일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에언자의 소명은 예언직으로 불리움 받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예언자로서 어떠한 마음 자세를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성찰하게 합니다.
이 시대의 예언자는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영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바로 하느님의 영은 먼저 하느님과 자신을 사랑하는데서부터 시작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사랑을 능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카리스마를 초월하고 예언자체보다 더 귀중한 것은 사랑입니다. 가장 완전하고 가장 행복한 구원의 길이 사랑의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 예언자의 사명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예언자가 증거하고 선포하는 최우선적인 것입니다..
주님을 닮은 사랑을 지닌 예언자로서의 삶은 과거의 잘못된 신비주의자들의 삶을 교훈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은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 고행이라는 수련을 통해 혹은 영적 도덕적 준비를 통해 하느님의 신비에 몰입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 사랑을 느끼지 못한 채 육체적 고행이나 기도 행위자체를 중요시 하였고 하느님 사랑에 기반되지 않는 높은 영적 지식만을 갈망하는 영지주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잘못된 예언자 상은 사랑이 아닌 교만으로 나타났습니다. 교만은 자기의 부족함과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고 하느님처럼 완벽하고 도덕적으로 흠없는 완전한 인간으로 자신을 치장하였습니다. 오로지 나만은 진실을 꿰뚫어보고 용기있게 진리를 말하고있다고 생각하며 나는 예수님처럼 남달리 홀로 진리 편에 있기 때문에 이해받지 못하고 고통을 겪는 것은 당연하고 견뎌내어야만 한다는 잘못된 인식들입니다.
이러한 교만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비판이나 모욕 등을 참지 못하여 즉각적으로 표출되는 것은 분노입니다. 무의식에 분노가 침입하면 사람이 자제력을 잃고 무방비로 분노에 내맡겨집니다. 분노가 사람을 망가뜨립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사랑이 자신안에 남아 있지 않고 완벽한 자기애로 가득찰 때 발생합니다.
이를 잘 말해주는 것이 오늘 복음에서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예언자가 어디서나 존경받는다'는 의미는 사랑과 겸손의 마음을 지닌 사람은 누구나가 예언자를 존경하게 되어 있는 보편적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고향과 친적과 집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는 의미는 교만과과 편견에 사로잡혀서 누구나 보편 타당하게 존경하는 예언자를 인정하지 못하는 편협함을 뜻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교만으로 가득차 참된 예언자이신 당신을 존경하지않는 이들의 편견에 좌우되지 않고 사랑과 자비를 보여주십니다. 이는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 신앙인들이 존경받는 예언자가 되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예언자의 궁극적 사명인 사랑의 삶을 살기위해서는 자기를 끊어 버리고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자기를 끊어버린다는 것은 본성의 사악한 성향들인 시기심, 질투, 교만, 욕망 등을 끊어 버림을 말합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통과 굴욕적인 것 그리고, 물질적인 빈곤을 기쁘고 감사하게 감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십자가 고통에 담겨진 그분의 무한한 사랑이 자신 안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주님께 은총을 청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고인현 도미니코 o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