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저는 공동체 형제들과 전반기 공동체 피정을 장봉도 공소로 다녀왔습니다.
장봉도는 인천 영종도에서 배를 타고 한 40분 가야 하는 곳이기에
오랜만에 배를 탔는데 배를 타서 그런지 정말 떠난다는 느낌,
모든 것을 홀가분하게 벗어버린 느낌이 들어 시작부터 저절로 피정이 되었지요.
그렇게 피정이 시작되었고 배를 타고 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김대건 신부님이
소환되었고 연결되었는데, 그것은 올해가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이고,
이번 포르치운쿨라 행진을 김대건 신부님 발자취 따라서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바닷가에 나가 2시간을 바다를 보며 묵상하였는데
이쪽으로 쭉 가면 중국에 가서 닿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김대건 성인이
이 바다를 길이 9m, 너비 4m의 그 작은 배로 오가셨음을 묵상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저는 오늘 강론의 제목을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로 정하고
좀 길지만, 이 편지를 발췌하여 소개하는 것으로 강론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김대건 부제의 열여섯 번째 편지
발신일 : 1845년 7월 23일
발신지 : 상해
수신인 : 리부아 신부
리부아 신부님께 지극히 공경하올 신부님,
저는 모든 준비를 끝낸 후 11명의 신자와 함께 배에 올랐습니다. 이들 가운데 4명만 사공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바다를 구경도 못한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모든 것을 비밀리에 급히 추진하다 보니 유능한 사공을 구할 수도 없었고 그 밖의 요긴한 물건들도 장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음력 3월 24일에 돛을 펴고 바다로 나아갔습니다. 신자들은 바다를 보고 대우 놀라면서 수군거렸으나 감히 저에게는 묻지 못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제가 하는 일에 대하여 질문하지 말라고 미리 금지해 두었던 때문입니다. 처음 하루 동안은 순풍을 만나 무사히 항해했으나 그 후 갑자기 비를 동반한 폭풍우가 3일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이 폭풍우로 인해 강남과 상해에서는 30척 이상의 배가 유실되었다 합니다. 우리가 탄 배는 바다에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는 작은 배였는데 폭풍우가 점점 심해지자 파도 때문에 몹시 까불리고 무섭게 내팽개쳐져서 거의 침몰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저는 배 뒤편에 끌고 오던 종선 줄을 끊어버리게 하였습니다. 그래도 위험이 여전히 계속되므로 두 개의 돛대를 베어버리고 마침내 식량까지 버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배가 조금 가벼워지기는 했지만, 폭풍이 부는 대로 산더미 같은 파도에 휩쓸려 요동을 쳤습니다. 신자들은 3일 동안 먹지 못하여 극도로 탈진하였고 살아날 가망이 없음을 보고 절망하여 "이제는 다 끝났다. 도저히 살아날 수가 없겠다." 하고 서글피 울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느님 다음으로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신 성모님의 기적 상본을 내보이면서 "겁내지 말라. 우리를 도와주시는 성모님이 여기 계시다."는 말로 가능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였습니다. 저 역시 신병중이라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으면서 일을 보았고 마음속의 두려움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제가 으뜸 사공으로 채용한 사람은 벌써부터 영세 준비를 하고 있던 외인이었기에 저는 그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얼마 후에 거센 물결에 키가 부러져 떠내려갔고 배는 폭풍과 파도에 까불리며 대양으로 떠밀려 갔습니다. 중략.
이제 우리는 인간의 구원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우리의 희망을 오직 하느님과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의탁하고 누워 잠을 청했습니다. 문득 잠에서 깨어나 보니 비도 그치고 풍파도 약해져 있었습니다. 하루가 지나자 우리는 기운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모든 이에게 음식을 먹고 주님 안에서 다시 정신을 차리라고 명했습니다. 이렇게 원기를 회복한 후 우리는 항해를 계속할 준비를 하려 하였으나 돛대도 없고 돛도 없고 키도 없고 종선도 없어 참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극히 영화로우신 우리 동정 성모님께 깊이 의탁하고, 배에 남아 있던 나무를 있는 대로 다 거둬 돛대와 키를 만들었습니다. 대략 닷새 동안 역풍을 거슬러 항해하였더니 우리는 강남성 해안에 도착하였고 멀리 산이 보였습니다. 중략
그래서 저는 그 배에 올라가 선장과 인사하고 나서 우리를 상해까지 인도해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저의 설명도 간청도 들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와 함께 산동으로 가서 관례에 따라 북경을 거쳐 조선으로 되돌아가라고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북경을 거쳐 귀국하고 싶지는 않고 배를 고치기 위해 반드시 상해로 가야 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마침내 그는 돈 천 원을 주겠다는 약속을 듣고서야 겨우 저의 청을 승낙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배를 그 배에 달아매고 대략 8일 동안 줄곧 역풍을 거슬러가다가 또 폭풍우를 만났으나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무사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끌고 가던 선장의 배는 파선하여 한 사람만 살고 그 외에는 모두 죽었습니다. 그 폭풍우가 지나고 다시 항해를 하는데 이번에는 해적들이 우리에게 달려들며 선장을 향하여 "조선 사람들의 배를 끌고 가지 말라. 우리가 그들을 약탈하련다."며 고함을 질렀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선장에게 그들을 폭파시키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러자 해적들은 우리를 떠나 달아나 버렸습니다. 약 7일 후에 오송구에 도착하였습니다. 중략.
한 번은 관장이 경찰관을 보내어 우리보고 언제 떠나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나는 배를 고치기 위하여 여기에 더 머물러 있어야 하오. 그뿐 아니라 당신들의 상급 관장한테서 들은 말인데 얼마 후에 세실 함장이 여기 온다고 하니 나는 그를 만나보기 위해서도 더 머물러 있어야 하겠소."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중국 관장은 우리 때문에 관직을 잃을까 봐 두려워 우리가 출발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 모든 사정을 다 설명드릴 필요도 없거니와 또한 그럴 시간도 없어서 이만 줄입니다. 이미 배는 수리하였고 지금은 종선을 만드는 중입니다. 저희 모두는 주님의 은혜로 잘 있습니다. 조선 대목구장 주교님의 도착을 날마다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공경하올 베지 주교님은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는데 길에서 병이 나셨다고 합니다. 남경에서는 작은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중략.
그리고 조선 선교지로 보내실 물건들은 모두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아는 여러 신부님들께 편지하실 때 저의 인사도 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곳 신자들이 모두 신부님께 인사드립니다.
공경하올 스승님께, 부당하고 무익한 아들 김 안드레아가 올립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다.^♡^
http://www.ofmkorea.org/367647
19년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기념일
(조심은 하되 걱정은 마라!)
http://www.ofmkorea.org/234765
18년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기념일
(현재도 행복하고 미래에 상도 받으려면)
http://www.ofmkorea.org/127823
17년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기념일
(위대함인가 은총인가?)
http://www.ofmkorea.org/106506
16년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기념일
(다 <때문에>)
http://www.ofmkorea.org/90987
14년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기념일
(사랑은 선택이다)
http://www.ofmkorea.org/64186
13년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기념일
(하느님은 이토록 가혹하신가?)
http://www.ofmkorea.org/54845
11년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기념일
(김대건 신부님의 도전)
http://www.ofmkorea.org/5181
10년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기념일
http://www.ofmkorea.org/4185
09년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기념일
(이를 앙 물고)
http://www.ofmkorea.org/2760
08년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기념일
(爲主평안 할지라!)
http://www.ofmkorea.org/14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