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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3주 월요일-주님의 부르심, 내 삶의 자리에서

by 당쇠 posted Jun 2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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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어제 루카복음의 마태오 판입니다.
오늘 마태오 복음이 어제 루카 복음과 다른 점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것 때문에 반감을 가지게 된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부한 앞부분의 얘기와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뒷부분의 얘기가 빠진 것입니다.

마태오복음은 왜 뒤돌아보는 것에 대한 얘기를 뺏을까 생각하다가
저는 생각이 옆길로 새는 바람에 주님을 따르다
왜 뒤를 돌아보게 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제 복음 묵상에서는 주님을 따르는 것이 너무 힘들기에
뒤를 돌아보게 된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는데
오늘은 다른 이유를 보려고 합니다.

저는 수도원에 일찍 들어왔습니다.
저뿐 아니라 일찍 입회한 형제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생각이 있는데,
그것은 세상 경험을 못해 세상을 잘 모른다는 것과
뭔가 손해를 본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래서 세상 경험도 다 하고
즐길 것 실컷 다 즐기고 들어온 형제들이 부럽기도 하고
세상을 모르고도 사목을 잘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목사님들에 비해서 세상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고
신자들의 어려움을 더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사목을 하는데 큰 장애라고 생각지는 않고,
그리고 세상이 부러워 뒤돌아보지도 않습니다.
지금 이 생활이 행복하기 때문이고
밖에 사는 사람들보다 제가 더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이 얘기를 듣고
“수도원에 사는 너만 행복하냐?
나도 행복하고 내가 더 행복하다.”고 하는 분이 계시지요?
당신 말씀도 맞으십니다.

아무튼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지금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뒤를 돌아보고
다른 세계를 기웃거린다는 것입니다.
수도원에 있는 사람이 가정생활을 기웃거리고
가정을 가진 사람이 수도원생활을 그리워하면
삶을 잘못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도피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그것을 다 얘기할 수는 없지만
수도생활을 그만 두겠다고 저도 수도원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저에 대해서 너무도 실망했기 때문에
저 같은 사람이 감히 주님과 프란치스코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너무도 부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이 그리워서 떠난 것 아니고
수도원 생활이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떠난 것도 아닙니다.
제가 수도원 들어올 때 저의 누나가
“수도원에서 못 살면 밖에서도 못 사는 거야!”라고 얘기해준 것이
저에게 못이 박혔기 때문입니다.
수도원에서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밖에서도 행복하지 못하고
가정생활에서 행복하지 못하면 수도원에 들어와도 행복치 않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뒤도 보지 말고 옆도 보지 말고
지금 내 자리에서 주님을 따르고
주님의 부르심을 충실하고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지금 내 삶의 자리에서 주님을 따르고,
지금 내 삶의 자라에서 행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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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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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홈페이지 넋두리 2010.06.28 22:27:32
    오늘 나도 행복합니다.
    비록 홀로가는 고독한 길이지만 가족이 있고 재속프란치스칸이라는 영적가족도 있어 다른곳을 기웃거릴 틈이 없어 지금 행복합니다.

    결혼않고 혼자사는 저에게 많은이들이 호기심을 가집니다.
    제가 저의 사랑이야기를 해주면 "그 사람이 누구냐? 내가 가만 안두겠다"라는 말까지 합니다.
    그럼 제가 뭐래게요?
    '그사람의 행복한 가정 깨뜨리면 어느 누구도 가만두지 않고 나에게 혼나' 라구요. ^^

    저도 한때 수도생활도 했습니다.
    그곳서 나왔을때는 그곳에서의 생활이 꿈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아무 미련도 후회도 남지 않았습니다.
    결혼하지 않음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수도성소, 결혼성소, 평신도로 주님의 길을 걸음을 비교하지 않으며 내가 더 행복하다라고 하지 않고 그냥 행복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이 길을 가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부럽지도 않고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도 없기 때문이며 이 길을 걸으며 끊임없이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고 필수이며 어느 누구에게도 제외되지 않습니다."
  • ?
    홈페이지 지금 2010.06.28 22:27:32
    지금 우리는 행복합니다

    나눌 수 있고 서로를 바라볼 수 있어서
    웃을 수 있고 울을 수 있어서
    아침이면 배란다에 파란 잎사귀 푸릇함 보며
    기도를 할수 있어서
    매일 아침이면 문 열고 들어와 이렇듯
    신부님 만나 뵈오며 하느님 소리 귀 기울여
    귀한 빛 가슴에 품께 하시기에....
    주님의 길 오늘도 뚜벅 뚜벅 걸어갑니다
  • ?
    홈페이지 요셉 2010.06.28 22:27:32
    그렇습니다.

    제가 아끼는 청년이 어느 날 찾아와서
    긴히 나눌 이야기가 있다는 겁니다.
    이야기의 내용은 같은 본당에서 활동하는 누나를
    그 동안 마음으로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헌데 그 누나가 안타깝게도 성소모임에 나가고 있고 누나는
    자신의 이런 마음을 모르고 있으며, 자기의 첫사랑이라고 하면서
    커다란 청년이 주먹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이런 자신의 마음을
    고백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겁니다.

    여러 차례 그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청년의 순수한 사랑이
    보기 드물게 아름다워 제 마음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전 앞일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질까 다소 불안하기도 했지만
    누나에게 고백을 하라고 했습니다.

    이유인 즉,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예수님이 인간 사랑을 위해 오셨다면
    인간 사랑을 모르고 어떻게 하느님이 사랑이시다고 말할 수 있겠니,
    사랑의 아픈 경험이 없으면 사람이 차가운 사람이 될 수도 있단다.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만큼만 다른 이를 이해하고 인도할 수 있다고 한다,
    누나가 너와의 관계에서 인간적인 사랑으로 질퍽거린다면
    이다음에 수도원에 가서도 그와 같은 일을 만나면 질퍽거릴 수 있단다.

    그 자매에겐 어쩌면 시험을 치루는 기회일 수도 있지,
    너와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사랑이 더 소중하다는
    결심이 들어 수도성소를 따른다면 그 자매는 훌륭한 수도자가 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네가 누나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가 가는 길에 네가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도 사랑을 해보니 사람의 감정이 만만하게 조절되는 것이 아니고,
    진정한 사랑은 아픔이라는 걸 깨달았단다.
    왜냐하면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이 아픔으로 다가온다는 말을 그때서야 알아들었단다.
    내 말이 너에게는 어쩌면 어려운 숙제일 수 있겠지,
    그래서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는 대중가요의 노랫말이 실감나더라,
    이 청년의 그 다음이야기는 기회가 주어지면요,

    제 삶의 자리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몫은
    주님을 따르기 위해 수도성소의 길에 들어선 수련자들이
    “주님, 당신은 모든 것을 아시니,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줄 알고 계시나이다.“ 라는 응답이
    이루어지도록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 일겁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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