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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6주 금요일-분심 없는 들음

by 당쇠 posted Jul 2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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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우는 하늘나라에 관한 듣지 못하는 세 가지 유형 중에,
즉 길에 뿌려진 씨, 돌밭에 떨어진 씨,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 중에
어디에 속할까요?

어제는 미사를 드리면서 내내 소음 때문에 마음을 뺏겼습니다.
아침 그리 덥지도 않은데 왜 에어컨을 킨 것인지,
키더라도 미사를 시작하면 소음 때문에 끄기로 했는데
왜 계속해서 틀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 분심이 들었습니다.

分心이란 마음이 갈렸다는 뜻인데,
마음 한 편으로는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려 하지만
마음의 다른 한 편에서 딴 것이 깔짝대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제는 소리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다고
소음을 탓하고 짜증을 내다가,
듣기 싫으면 듣지 말지 왜 소음을 듣고 있느냐고 하다가,
누가 듣고 싶어서 듣나 듣지 않을 수 없으니 듣지 하다가,
하느님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는 탓을 소음에 왜 돌리냐 하다가
미사가 끝났습니다.

들리는 것을 안 들을 수 없고
그래서 소음이 듣는 것을 방해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또 어떤 경우 어디에 몰두하면 물리적으로는 소리가 나는데도
전혀 듣지 못하니 소음이 방해하는 것이 아니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듣고 안 듣고는 자기에게 달린 참으로 묘한 것입니다.

옛날에 다방이라는 것이 있어서 거기서 사람을 만날 때
사람을 만나 얘기를 나누는데
그날따라 음악이 너무 시끄러워 상대의 말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음악이 바뀌면 얘기하자고 하고 다방 안을 둘러봤습니다.
그런데 저 편에서 남녀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들은 시끄런 음악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랑이 모든 소음을 몰아냈을 뿐 아니라
소음이 오히려 둘을 바짝 붙어서 얘기를 나누게 하고
소음이 더욱 그들을 서로에게 집중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은 소음을 이겨내고 대화를 성공시킵니다.

반대의 경우가 있습니다.
몇 년 전 경향 피아노 경연이 있었습니다.
영 한우리 아이들이 몇 참여하고
또 가까운 곳에서 하기에 격려차 갔습니다.
저는 본래 음악회에 잘 가지 않습니다.
기대를 하고 갔다가 실망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음악적 만족을 위해서는 아예 가지 않고
아는 사람 격려 차원에서만 몇 번 갔는데
이번에도 격려 차원에서 간 것입니다.

같은 곡을 몇 십 명이 연주하는데
처음 듣는 곡인데도 저는 잘못 연주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왜 잘못 연주한 것만 들리는지
듣고 있는 것이 참으로 괴로운 노릇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노릇은 우리 아이들이 연주할 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랑 없이 욕심으로 들으니
판단이 되어 지고 연주의 잘잘못이 들리는데
사랑으로 들으니 그저 연주가 들린 것이었습니다.
판단을 하지 않고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튼 듣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작용이 아닙니다.
마음의 작용이고 사랑의 작용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는 갖가지 장애로 인해 듣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랑을 하면 온갖 장애가 있어도 듣고야 맙니다.
결국 분심은 사랑 없음의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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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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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웃지요 2010.07.23 08:00:11
    갈라지지 않는 유순한 마음이
    사랑의 작용이라 하시니
    일치로 엮어
    듣고 보고 새길 수 있도록
    긴장하는 하루살이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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