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콜로새서는 주님 안에서 살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주님 안에서 사는 삶'으로 주제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는 주님 안에서 살라고 하는 이유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주님 안에서 살지 않아도 되겠지만 주님으로 받아들인 한
주님 안에서 살아야 된다는 것인데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요.
말로는 주님이라고 하면서 사는 것은 주님과 무관하게 살거나
프란치스코가 그래서 추궁받았듯이
다른 것들을 주인으로 섬기며 살면 안 되겠지요.
그렇다면 주님 안에서 사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
바오로 사도는 우선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살라고 합니다.
주님 안에서 살기는 하는데 늘 불평불만이거나 원망하며 살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그렇게 살면 주님께 불충인 것이 아니라 자기가 불행한 것이고,
그러므로 감사하는 마음이 넘쳐야 하는 것은 주님이 아니라 날 위해서지요.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는 것은 그릇으로 치면 물이 차고 넘치는 것이고,
이것은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대만족인 것이고
그러기에 이렇게 사는 것이 참행복이요, 요즘말로 하면 찐-행복이며,
이런 사람이라야 참으로 찐-사람이지요.
사실 넘치게 행복한 사람에게서만 감사가 나오는 법이고,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어서 "여러분은 그분 안에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라고 얘기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다음으로 이렇게 얘기합니다.
"여러분은 또한 그분 안에서 육체를 벗어 버림으로써,
사람 손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할례 곧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아 사는 거라는 뜻인데
그리스도의 할례란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묻히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리스도의 할례란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바오로 사도는 또한 얘기합니다.
극단적으로 얘기하여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 할례는 포경수술에 불과하고,
이런 포경수술은 건강이나 청결의 의미 외에는 다른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세례의 의미도 머리에 물을 뿌리거나 물속에 잠기는
그런 외적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이지요.
이것은 물고기로 치면 물 밖에서 살지 않고 물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물고기가 물 밖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특히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살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연명하는 것이고
생기와 활기 있게 사는 것이 아니라 꾸역꾸역 사는 것이겠지요?
물 밖의 고기처럼 헐떡이며 사는 나는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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