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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 하시는 성모님 :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

by 이종한요한 posted Sep 1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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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바느질 하시는 성모님 (16세기)

소재지 :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 (Chartres Cathedral)


종교에 대한 현대인들의 관심을 반응하듯 과거 자리를 잡았던 권위적인 종교의 가치나 태도는 점점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사라지고 있으나 교회 미술과 음악에 대한 관심을 식지 않아서 늙은 신자나 부녀자가 대종 참석자인 썰렁한 미사나 예배가 끝난 후면 성당을 가득 채우는 관광객들이 몰리고 있다.


가톨릭과 개신교에 있어서 가톨릭은 시각적 표현인 미술과 청각적 표현인 음악 양쪽에 관심이 있는데, 개신교는 음악적 표현에는 관심이 있으나 시각적 포현인 미술에 대해선 부정적이면서도 소극적인 표현을 보이는 것은 우상숭배라는 것에 대한 잘못된 시각에서 온 것이다.


프랑스의 상징적인 성격을 담고 있는 고딕 대성당에는 성당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있으며 따라서 고딕 건축에 대한 여러 저서들이나 강의에도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우리들에게는 프랑스 선교사들이 성당을 지으면서 종각이 있는 코틱 흉내를 낸 성당을 지음으로 고딕 건축이 성당 건축의 기본과 같은 인상을 줄 만큼 고딕 성당은 우리에게 친근감 있는 곳으로 정착되어 있다.

샤르트르 대성당은 파리 근교 60Km 떨어진 프랑스의 고딕 성당 중에서도 걸작에 속하는 유명한 순례지 성당이다.


이 대성당은 초 세기부터 성전이 있던 것으로 여러 세기를 거치면서 여러 번 화재를 겪을 때 마다 새롭게 재건되었으며 1194년 새로 중건하면서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 시작된 대성당이 1262년에 완공되었으니 근 한 세기 동안 성당이 건축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성당 건축은 건축 담당자나 전문가의 일이 아니라 교우 전체가 동참하는 신앙 행사였다. 이때 성당을 지을 때 성당 건축 전문가 몇 사람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일반 교우들이어서 봄부터 시작되는 농번기에는 집에서 농사를 짓다가 추수가 끝난 후 모두 성당 공사장에 가서 일하면서 공사를 하다 보니 한마디로 교우 전체의 정성이 모여 성당이 지어진 것이다.


먼저 이 성당의 종탑을 크기가 서로 다르다는 것은 이 성당은 이런 역사를 잘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긴 세월 공사를 하면서 건축 양식도 서로 달라졌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중세기 성당 공사는 건축 자재를 더 튼튼한 것으로 사용하면서 견고성을 더했고이 결과로 벽이 튼튼해지면서 창문을 더 크게 만들어 빛의 효과를 영성화시킨 스테인드글라스라는 걸작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샤르트르 대성당은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양과 질에 있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으며 이 성당에 성상 조각 역시 4000여개가 되면서 성당 자체가 중세를 아우르는 대표적 작품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이 작품은 이 성당이 보관하고 있는 유명한 성물인 성모님이 예수 아기를 낳으실 때 입으신 옷(Santa Camisa)을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중세기부터 많은 순례자들이 모이는 성지였다.


이 옷의 전설은 중세기 까지 올라가나 이 옷이 성모님이 입으신 옷이라는 역사적 신빙성은 없으나 당시 사람들의 신앙 이해에는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 옷이 성모님이 직접 입으신 진품인지 아닌지는 과학적 영역에 속하는 것이고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구세주의 어머니가 된 성모님의 믿음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하는 신앙 표현으로 이 작품은 고귀한 것이다.


1194년 대화재 때에도 이 옷은 남았다는 것이 중요한 감동이 되었고 이때 많은 신자들이 헌금을 해서 이 성당을 오늘의 모습으로 만들었다.


이 성당이 천년 이상의 세월을 견딘 데에는 참으로 감동적인 사건이 많았다. 1789년 프랑스 혁명 때 많은 반교회주의 폭도들이 이 성당을 파괴하기 위해 몰려왔으나 시민들은 목숨을 걸고 이 성당을 방어한 덕분에 폭도들의 만행을 막을 수 있었다.


지난 세기 세계 이차 대전 말기 이 성당은 또 존폐의 위기를 맞았다. 독일과 전쟁 중이던 미군들은 이 성당에 은신하고 있는 독일 군들을 섬멸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 성당은 폭파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미군 사령관은 담당 장교에게 이 성당 폭파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 장교는 이 성당의 가치를 아는 지성인이었기에 이 성당 폭파 명령에 불복하고 자기가 위험을 무릎 쓰고 독일 군이 은신하고 있다는 이 성당 종각을 찾아가서 독일 군이 없음을 확인하고 이 성당을 파괴하지 않았기에 오늘 이 성당이 남을 수 있었다.


1979년 이 대성당은 유네스코 문화재로 등록됨으로서 온 세상 사람들에게 이 성당이 주는 아름다운 교훈을 전달하는 감동적 교육의 장이 되었다.


이것은 마치 우리나라 해인사가 한국 전쟁 때 겪은 대장경각과 같다. 당시 해인사에는 많은 공비들의 은신처가 되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오면서 대장경각을 폭파시킴으로서 공비들을 소탕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이 명령을 받은 책임자가 양심과 지성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여기 불복함으로서 오늘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 남게 된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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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성모상을 생각할 때 성서와 연관되는 부분 즉 천상의 여인, 은총이 가득하신 여인으로서 성모님의 모습에 너무 익숙해 있으며 따라서 성모님은 우리와 다른 비범한 존재임을 깨닫는 것으로 만족하게 된다.


그러나 이 성모상은 이런 우리 신심 생활의 아쉬움을 보완해주는 좋은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성모님은 우리의 전구자이심과 동시에 우리 모든 어머니들의 모델임을 제시하는 것이다. 고딕 대성당의 분위기가 너무나 천상적인 것을 강조함으로서 인간적인 것의 표현에는 위축감을 느낄 수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이 작품은 성모님의 인간미 풍기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구약 잠언에 나타나고 있는 훌륭한 아내의 모습처럼 푸근한 어머니 모습의 성모님을 제시하고 있다.


“훌륭한 아내를 누가 얻으리오? 그 가치는 산호 보다 더 높다(잠언 31:10) 한손으로 물레질 하고 다른 손으로는 실을 잡는다. 온 집안이 진홍색 양모로 옷을 해 입으니 그 집안은 겨울  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잠언 31:21) 그 아내는 아마 속옷을 만들어 팔고 띠를 만들어 장사꾼에게 넘긴다. 힘과 위엄이 그 아내의 옷 앞날을 흐뭇하게 바라본다.”(잠언 31:24-25)


성서는 이처럼 바느질을 부덕의 중요 상징으로 표현했기에 이 작품을 만든 작가는 나름대로의 성모 신학을 바느질하는 성모님의 모습으로 표현했는데. 이것은 현대적인 시각에서도 매우 예언적인 것이다.


우리는 많은 순간 성모님을 천상의 여인으로 묘사하기에 성모님과 우리 사이에 어떤 인간적 연결 고리를 잡지 못하고 성모님을 신심의 대상으로만 여길 때가 많은데 이 작품은 이런 면에서 성모님의 평범한 삶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상 삶의 영성을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성모님의 옷차림을 그래도 전통적인 귀한 티가 나는 모습으로 부각시켰다. 성모님의 복장이 중세 수준으로는 준수한 귀부인의 모습이다. 허나 성모님의 얼굴은 고딕 건축과 어울리는 않는 모습이다.


고딕 건축의 조각들은 하늘을 향해 끝없이 오르려는 집념의 표현처럼 얼굴을 긴 모습으로 만들어 신비감을 더하고 있는데, 여기 성모님은 시골 아낙네와 같은 친근성을 띈 모습이다.


이것은 일상성의 영성에 중요성을 강조한 좋은 표징이다. 성모님의 위상을 천상의 어머니 하늘의 여왕으로 표현하는 것은 우리가 알아야 할 성모님 모습의 가장 중요한 부분 우리와 같이 열악한 환경에서 어머니로 사셨다는 것을 망각하기 쉽게 만드는데 이 작품은 바로 이런 우리에게 너무 친근하면서도 잊기 쉬운 성모님의  실상을 전하는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성당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테인드글라스 양과 질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과 함께 성상 역시 4000여개라는 대단한 수준이 있다. 그 중에 성모님에 대한 것도 너무 다양하게 많은데 특히 우리 문화에서는 좀 생소하게 여겨지는 것은 검은색 성모상도 있다.


서양 문화에서 색깔에 대한 상징에 있어 흰색은 선, 검은색은 악으로 설정된 것이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주고 있는데, 성모상에 있어 파격적인 표현으로 이런 잘못된 것을 검은 성모상으로 바로 잡았는데, 이 성당에도 검은 성모상이 있다.


검은 색은 대지의 상징임을 강조하면서 성모님은 대지처럼 영혼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좋은 성장의 씨앗을 키워주는 대지와 같은 어머니로 묘사함으로서 성모님을 통해 여성성의 고귀함을 표현했다.


성모님은 하늘의 여왕이시기 이전 우리와 꼭 같은 인간으로 나자렛이라는 당시 사회에서 하층민이 살던 마을 출신이셨다. 이런 대단한 성당에서 이런 소박한 예수님의 어머니를 만나다는 것은 참으로 엉뚱하면서도 놀라운 것이다.


이 작품은 우리 크리스챤들이 너무 일방적으로 강조했던 위대한 여인 마리아에 가려 보지 못했던 성모님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게 만든다. 너무도 평범하기에 모든 이의 어머니가 될 수 있었던 마리아의 모습을 발견하게 만든다.


성모님이 바느질감을 들고 계신 아래에 성서 책이 펼쳐져 있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항상 성모님은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갔던 여인임을 상기시키는데 그 위에 성모님은 바느질감을 들고 있다.


즉 평범한 삶의 현실에서 무슨 성서학자 수준이 아니라 아낙네 수준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있는 어머니이심을 알리고 있다. 또 성모님의 옆구리 근처엔 바늘과 골무와 같은 바느질 용품을 넣어둔 상자를 차고 있는데, 이것은 옛날 조선 시대 사대부 여성이 차고 있던 은장도처럼 소박한 이스라엘 주부들의 필수품이었다.


그 대단한 기획 속에서 성모님의 참 모습을 전해준 작가의 혜안 이 성당의 위대함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 작품은 16세기 어떤 이름 없는 장인이 만든 것이다. 성 미술에 있어서 많은 경우 작가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자기 이름을 밝히는 것을 부끄러움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가 그 유명한 피에타를 만들고 나서 우쭐한 기분에 누군가가 그 작품이 자기 것 인줄 알아주길 바랐으나 누구의 작품인지 알지 못하는 것을 보고 분통이 터져 성모님 앞부분 띠에 자기 이름을 새기고 나서 큰 부끄러움을 느끼고 일생 동안 작품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인간적인 차원에서 볼 때 이 대단한 작품이 많은 이 대성당에 이 성모님의 작품은 너무도 평범하고 초라해서 기억도 힘든 그런 작품이나, 영성적인 눈으로 보면 이 성당의 의미성을 가장 정확히 알려 주는 영혼의 등대와 같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현한 빛을 품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조명을 받는 4000여개의 성상 중 참으로 초라한 것이나 이것이 신자들에게 잊기 쉬운 성모님의 진면모를 보인다는 면에서 보석 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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