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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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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이런 말이 예수님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이
저에게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정말 이런 분이라면
이런 분을 저는 저의 주님으로 결코 믿지 않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닌 사람이 이 말을 들으면
저만이 아니라 누구나 저와 같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얘기가 이방인을 위해 쓰인 루카복음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말만 보면 예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 이해되지 않지만
전체 맥락에서 보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한껏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말씀을 하셨음에도
강아지도 주인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는다는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십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아, 여인아!”
이 짧은 말에서 감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감탄을 받는 여인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기 위해서
앞서 여인에게 그 모진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여인이 예수님을 믿었고 그 믿음이 컸지만
예수님도 여인을 믿었고 그 믿음이 컸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서로 믿은 것이고,
그러므로 오늘 복음의 전체 대화는
서로 믿는 사람 사이에서나 오갈 수 있는 대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진 말을 해도
여인이 홱 토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셨고
상처를 받지 않으리라고 믿으셨습니다.
아니 그 이상으로 믿으셨습니다.
이런 말을 해도 당신의 사랑을 믿으리라고
여인의 믿음을 믿으셨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상호 신뢰입니다.

제가 양성을 담당할 때입니다.
교육 체제의 변화 문제로 형제들이 화가 나서 저를 찾아왔습니다.
교육 체제가 바뀌는 중요한 문제를
교육의 한 당사자인 자기들과 왜 얘기하지 않느냐고
떼거리로 몰려와 따지는 것이었습니다.
형제들에게 얘기해 줄만큼 아직 교육진의 안도 나오지 않았음을,
그래서 안이 나오면 얘기하려고 했음을 얘기했지만,
얘기를 하다보니 형제들의 입에서 안 해야 할 말까지 나왔습니다.
“원장님을 도저히 신뢰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그 순간, 너무 충격을 받아 말이 나오지 않았고,
더 이상 얘기해봤자 얘기가 될 것 같지 않아
나중에 더 얘기하자고 하고 그 날은 거기서 끝났습니다.
방에 돌아와 마음을 추스르려 하였지만
아무리 해도 화가 풀리지 않아 성당으로 갔습니다.
조용히 성찰을 하고 있는데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형제들이 너를 도저히 믿지 못한다고 했는데 사실은
너를 믿는다는 표시다.”는 주님의 말씀이 마음속에서 들렸습니다.
형제들이 저를 믿지 않았으면 그런 말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말을 한 형제에게 그런 말을 했다고 해서
어떤 불이익을 주거나 수도원에서 퇴회시키거나 할 사람으로
저를 생각했다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친부모의 자식은 어미에게 할 말 못할 말을 다 합니다.
어떤 말을 해도 어머니는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내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붓자식은 가려서 말을 합니다.
만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다면 갈라설 마음으로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님과 여인은 서로의 큰 믿음을
제자들과 유대인들에게 시위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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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33TERRY 2010.09.07 23:32:30
    전 믿음 없는 놈이라는 게 들통나버리네요. 감사합니다.
  • ?
    홈페이지 넋두리 2010.09.07 23:32:30
    저는 이 복음 내용을 들을때마다 느끼는 마음은 여인의 청에 반응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들과 별로 다를게 없는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여인의 포기하지 않는 항구한 믿음의 말은 지혜로우며 제대로 예수님을 알아보고 청하는 자세로 다가옵니다.

    여인의 청에 감탄하시는 예수님의 반응....
    보통 우리 인간들과는 다른 측은지심으로 이어지는 하느님의 사랑이 엿보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느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는 마음과 인간이 하느님을 사랑하며 보채는 마음이 통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용의 묵상이 저에게 다가왔을때 저의 처지가 참으로 궁하였을때라고나 할까요?
    여인의 믿음처럼 나도 하느님을 "제대로" 믿고 청하면....

    오래전의 이 복음내용이 오늘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감사합니다.
  • ?
    홈페이지 요셉 2010.09.07 23:32:30
    그렇습니다.


    이 복음을 대할 때 마다 지금까지 갖고 있었던 예수님에
    대한 이미지와는 좀 다른 모습에 당황했었는데
    오늘은 복음을 바라보는 생각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구원의 조건이 믿음이라는 의미가 숨어있는데,
    믿음이 구원의 조건이 될 만큼 믿음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믿음이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아닐 것입니다. 나름 상대에게 믿음이 가고 그 믿음의 확신이 설 때
    그와 함께 할 수 있고 사랑하게 까지 된다 싶습니다.
    그러니까 신뢰관계는 서로 주고받는 양방통행이지 일방통행이 아니다 싶은 거죠.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믿음을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고
    또한 상대의 속내를 꿰뚫는 예리함과 투명한 눈길이 서로 마주쳐야 할 것입니다.

    진실한 관계를 맺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우리 모두는 믿음을 주고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으면서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처럼 피상적인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아픔이 있는 것도 현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자신의 삶의 방향에 정직하게 반대하는 말을 하지 않는 친구는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없다.”

    진실을 말하는 것은 위험을 감수하는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싶습니다.
    왜냐하면, 상대가 나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관계가 깨질 수도
    있음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것이 두려워 예스맨으로 표피적인 만남이 일상이 될 때
    만나고 돌아서면 공허함이 밀려오는 경우를 경험하게 된다 싶습니다.

    이 여인처럼 예수님의 말마디를 넘어 속내를 꿰뚫는 예리함과 투명한
    눈을 갖고 두려움 없이 예수님과 속된 말로 맞장 뜨는 용기가 필요하다 싶습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는 성서말씀처럼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미에게 자신의 감정을 속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원색적으로
    말 할 수 있는 자녀는 부모에게 그 만큼 믿는 황금 같은 신뢰가
    있는 것 일 겁니다.

    우리 모두는 상대가 나에게 이런 믿음으로 다가오는 사람으로 존재하고
    내 자신도 이런 믿음으로 다가 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세상은
    살아볼만한 것이라는 생각을 이아침에 하게 되네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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