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 바로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있는 종들!”
기다리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저승사자를 기다린다든지
심판관을 기다리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고 싶은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은 행복하겠지요.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은 아주 행복할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비교하여,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사람과 비교하면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입니까?
반대의 경우도 있지요.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자기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그 사람은 정말 불행합니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 사람은
사람은 없고 일만 있으며,
사랑이 없이 일 더미 속에서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기다리는 것은 역시 만남이 있을 때 행복한 것이고,
그럴 때 Happy ending이 되지요.
기다리고 기다려도 님 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슬픔이고 불행입니다.
만남이 이루어지는 기다림은 몸은 비록 지금 떨어져 있어도
마음 안에 그 존재가 충만하게 현재하고 마음 설레게 하지만
기다려도 오지 않는 기다림은 부재의 확인이요
그래서 크나큰 슬픔입니다.
만남의 기쁨만큼 못 만나는 슬픔이 자리하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만남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요 보람을 주는데,
그런데 오늘 복음의 주인은
기다리는 종의 그 충성스러움과 노고를 너무도 잘 알아주시고
고마운 마음이 넘쳐서 성찬을 마련하시고 시중까지 드십니다.
주인이 기다리는 종에 대하여 이토록 고마워하시고
성찬까지 마련하고 시중까지 들어주심은 역설적이게도
주인님을 기다리는 종들이 많지 않다는 역설이겠지요.
멀리 갈 것 없이 저를 보면 알 것입니다.
저는 주님께서 오시는 것을 그렇게 기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작년에도 얘기한 것 같은데,
이미 주님이 와 계신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무튼 저조차도 주님 오심을 그리 기다리지 않습니다.
아무튼 이 비유를 통해서 볼 때
우리의 주님은 우리의 기다림을 기다리시고,
기다리는 우리의 그 사랑과 노고를 너무도 잘 알아주시며,
우리의 기다림을 너무도 고마워하시는 분이시니
우리의 주님은 정말로 우리가 기다릴 만한 분이십니다.
곧 바로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있는 종들!”
기다리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저승사자를 기다린다든지
심판관을 기다리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고 싶은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은 행복하겠지요.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은 아주 행복할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비교하여,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사람과 비교하면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입니까?
반대의 경우도 있지요.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자기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그 사람은 정말 불행합니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 사람은
사람은 없고 일만 있으며,
사랑이 없이 일 더미 속에서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기다리는 것은 역시 만남이 있을 때 행복한 것이고,
그럴 때 Happy ending이 되지요.
기다리고 기다려도 님 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슬픔이고 불행입니다.
만남이 이루어지는 기다림은 몸은 비록 지금 떨어져 있어도
마음 안에 그 존재가 충만하게 현재하고 마음 설레게 하지만
기다려도 오지 않는 기다림은 부재의 확인이요
그래서 크나큰 슬픔입니다.
만남의 기쁨만큼 못 만나는 슬픔이 자리하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만남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요 보람을 주는데,
그런데 오늘 복음의 주인은
기다리는 종의 그 충성스러움과 노고를 너무도 잘 알아주시고
고마운 마음이 넘쳐서 성찬을 마련하시고 시중까지 드십니다.
주인이 기다리는 종에 대하여 이토록 고마워하시고
성찬까지 마련하고 시중까지 들어주심은 역설적이게도
주인님을 기다리는 종들이 많지 않다는 역설이겠지요.
멀리 갈 것 없이 저를 보면 알 것입니다.
저는 주님께서 오시는 것을 그렇게 기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작년에도 얘기한 것 같은데,
이미 주님이 와 계신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무튼 저조차도 주님 오심을 그리 기다리지 않습니다.
아무튼 이 비유를 통해서 볼 때
우리의 주님은 우리의 기다림을 기다리시고,
기다리는 우리의 그 사랑과 노고를 너무도 잘 알아주시며,
우리의 기다림을 너무도 고마워하시는 분이시니
우리의 주님은 정말로 우리가 기다릴 만한 분이십니다.
보이지않는 것들을 그리워하며 살다보니
기다리는 일이 몸에 잘 맞는 옷처럼 익숙해져요.
이 길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
저도 주님을 사랑하며 그리워하며 기다립니다.
신부님! 늘 감사드립니다.
요셉님! 오랜만이예요^^
내가 그리워 할 사람이 있고
나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처럼 행복한 것이 있을까!
그 그리움의 대상, 믿음의 대상이 비록 불완전한 인간일지라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기다려 주고 믿어주는 한 인간에 대한 믿음,
그 믿음의 연장선상에 하느님이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점이 모여 직선이 되고 순간순간이 모여 영원을 이루듯 말입니다.
그래서 기다림은 인내를 요하는 고통이 따르지만 그 고통을
오롯한 마음으로 견디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주님은 우리의 기다림을 기다리시고,
기다리는 우리의 그 사랑과 노고를 너무도 잘 알아주시며,
우리의 기다림을 너무도 고마워하시는 분이시니
우리의 주님은 정말로 우리가 기다릴 만한 분이십니다“
라는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고 말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