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자손은 계약을 충실하게 지키고
그들 때문에 그 자녀들도 그러하리라.
그들의 자손은 영원히 존속하고 그들의 영광은 사라지지 않으리라.
그들의 몸은 평화롭게 묻히고 그들의 이름은 대대로 살아 있다.
뭇 백성이 그들의 지혜를 기리고 회중이 그들을 칭송하리라.”
부모에게 있어서 제일 큰 행복은 무엇일까?
예를 들어서 자신이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과
자녀가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더 큰 행복일까?
자신은 크게 성공을 하였는데 자식은 개망나니가 되는 것과
자신은 평범하다 못해 비참한 삶을 살았지만
자식이 크게 성공을 한다면 어떤 사람이 더 영광스러울까?
또는 당대에는 대단히 유명했는데
그것을 잇는 사람이 없어 곧 잊혀지는 사람과
당대에는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았는데
그 제자들이 발전시켜 뒤늦게 그 가치가 드러나는 사람 중에
누가 더 행복하고 누가 더 영광스러울까?
제대로 된 부모라면,
다시 말해서 자식을 정말로 사랑한 부모라면
자신은 망가져도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것이고,
따라서 자신이 성공하는 것보다
자식이 성공하는 것을 더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행복해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모의 희생적 사랑에 의해 제대로 교육 받은 자식이라면
그런 부모를 반드시 기억하고 그 사랑을 이어갈 것입니다.
성인들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성인들은 하느님과 이웃을 자신을 다 바쳐 사랑한 분들이고
그러 했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 희생적 사랑에 감화를 받아
그들의 삶을 따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삶을 이어가는 후예가 없는 성인이란 있을 수 없고
교회 역사상 본받는 후예가 없는데도 성인이 된 예도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1, 2, 3회
모든 프란치스칸 가족 성인들의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어떤 영적 가족보다 많은 성인을 가지고 있고
이것은 성인들의 영광이요 우리의 영광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 프란치스코가 권고 6번에서 말하듯
성인들의 삶은 본받지 않은 채
성인들이 많음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심지어 프란치스코의 후예들이라고 하면서
다른 성인에 대해서는 책도 읽고 강론 때 얘기도 하지만
정작 프란치스칸 성인들에 대해서는 깊이 공부하려 하지도 않고
사람들에게 프란치스코의 영성을 널리 전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다른 성인들은 그저 편하게 읽고 얘기할 수 있지만
우리의 성인들은 읽을 때마다 본 받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고,
본받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을 때는 가슴이 찔리기 때문이겠지요.
성인들의 삶은 열성이 있는 사람에게는 감동을 주지만
열성이 없는 사람에게는 부담이요 통증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칸 성인들의 축일을 지내는 오늘,
그들의 후예들은 계약을 충실히 지키고
그들의 영광과 이름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살아있다는 집회서의 말씀은
이런 면에서 저를 크게 아프게 하고 뉘우치게 합니다.
그들 때문에 그 자녀들도 그러하리라.
그들의 자손은 영원히 존속하고 그들의 영광은 사라지지 않으리라.
그들의 몸은 평화롭게 묻히고 그들의 이름은 대대로 살아 있다.
뭇 백성이 그들의 지혜를 기리고 회중이 그들을 칭송하리라.”
부모에게 있어서 제일 큰 행복은 무엇일까?
예를 들어서 자신이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과
자녀가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더 큰 행복일까?
자신은 크게 성공을 하였는데 자식은 개망나니가 되는 것과
자신은 평범하다 못해 비참한 삶을 살았지만
자식이 크게 성공을 한다면 어떤 사람이 더 영광스러울까?
또는 당대에는 대단히 유명했는데
그것을 잇는 사람이 없어 곧 잊혀지는 사람과
당대에는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았는데
그 제자들이 발전시켜 뒤늦게 그 가치가 드러나는 사람 중에
누가 더 행복하고 누가 더 영광스러울까?
제대로 된 부모라면,
다시 말해서 자식을 정말로 사랑한 부모라면
자신은 망가져도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것이고,
따라서 자신이 성공하는 것보다
자식이 성공하는 것을 더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행복해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모의 희생적 사랑에 의해 제대로 교육 받은 자식이라면
그런 부모를 반드시 기억하고 그 사랑을 이어갈 것입니다.
성인들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성인들은 하느님과 이웃을 자신을 다 바쳐 사랑한 분들이고
그러 했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 희생적 사랑에 감화를 받아
그들의 삶을 따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삶을 이어가는 후예가 없는 성인이란 있을 수 없고
교회 역사상 본받는 후예가 없는데도 성인이 된 예도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1, 2, 3회
모든 프란치스칸 가족 성인들의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어떤 영적 가족보다 많은 성인을 가지고 있고
이것은 성인들의 영광이요 우리의 영광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 프란치스코가 권고 6번에서 말하듯
성인들의 삶은 본받지 않은 채
성인들이 많음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심지어 프란치스코의 후예들이라고 하면서
다른 성인에 대해서는 책도 읽고 강론 때 얘기도 하지만
정작 프란치스칸 성인들에 대해서는 깊이 공부하려 하지도 않고
사람들에게 프란치스코의 영성을 널리 전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다른 성인들은 그저 편하게 읽고 얘기할 수 있지만
우리의 성인들은 읽을 때마다 본 받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고,
본받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을 때는 가슴이 찔리기 때문이겠지요.
성인들의 삶은 열성이 있는 사람에게는 감동을 주지만
열성이 없는 사람에게는 부담이요 통증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칸 성인들의 축일을 지내는 오늘,
그들의 후예들은 계약을 충실히 지키고
그들의 영광과 이름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살아있다는 집회서의 말씀은
이런 면에서 저를 크게 아프게 하고 뉘우치게 합니다.
무엇 인지를 곰곰이 생각하고 묵상 해 봅니다.
우리 사부 성 프란치스코 !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