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마리아의 찬미는 가장 아름다운 하느님 찬미이고,
그래서 매일 저녁 성무일도 때 우리도 마리아가 되어 바치는 찬미가입니다.
마리아는 우선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 기뻐하며 찬미합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 기뻐하고 찬미한다고 해서
비구원의 나락에 떨어지는 사람이 참으로 많은데
자신은 그렇지 않고 구원에 턱걸이한 것에 대해 기뻐하고
그래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으로 알아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구원에 대해 전전긍긍할 정도로
하느님의 구원에 대해서 믿지 못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만일 그런 마리아라면 그의 믿음은 너무도 초라하고,
자신의 구원에 대한 그의 찬미는 매우 소시민적 이기주의의 토로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구원에 대한 그의 찬미는
비구원에서 구원에로 옮겨진 것에 대한 초라한 찬미가 아니라
비천한 자신이 주님의 어머니가 된 것에 대한 겸손한 찬미이고,
비천함을 비천하게 여기지 않으시는 대단한 하느님 사랑에 대한 찬미입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찬미는 자신의 구원을 넘어서는 찬미입니다.
자신을 통해서 자신과 비슷한 모든 사람이 받는 구원,
곧 인류 공통의 구원에 대한 찬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자신의 비천함을 굽어보시고
자기에게 큰일을 하셨음을 찬미한 다음 이어지는 찬가에서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비천한 이들을 높이셨으며,
굶주리는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습니다.”고 찬미합니다.
마리아는 자기만 구원받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자기 같이 보잘 것 없는 존재를 통해 온 인류가 구원되는,
그런 대단한 구원에 대한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리아는 Solo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Symphony를 하는 겁니다.
Symphony의 "sym"이 무슨 뜻입니까?
“함께”라는 뜻이지요.
그러니 마리아는 혼자 노래하지만
결코 혼자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처럼 구원받은 모든 사람과 함께, 그리고
자신을 통해 구원받은 모든 사람과 함께
인류 모두의 구원에 대해 찬미하는 겁니다.
그런데 인류 모두의 구원에 포함되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마리아는 이들에 대해서도 얘기합니다.
비천하지 않는 자들,
비천함을 인정치 않는 자들,
비천해지려 하지 않는 자들,
이 세상에서 행복을 누리려는 교만한 자들,
그래서 가난 이들을 착취하고 내리누리는 부유한 자들,
이들을 주님께서는 내치실 것이라고 찬미 노래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교만한 자가 고꾸라지고
부자가 알거지가 되는 것을 고소해하는,
그런 비천하고 가난한 사람의 복수찬가 쯤으로
이해하거나 전락시켜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복수나 대신 해주는 분이 아니지요.
하느님은 정의로 심판하시지 복수심으로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모두의 구원을 원하시지 누구의 배제를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