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 기도와 지향
2022년 1월 21일 금요일
교부들의 말씀 묵상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마르 3,17)
예언을 완전한 기억으로 새겨 주는 새로운 이름
그분은 야고보와 그의 형제를 “천둥의 아들들”이라 부르셨습니다(마르 3,17 참조), 왜 그러셨
을까요? 당신이 바로 구약성경을 주신 하느님이시며, 아브람을 아브라함이라{창세 17,5 참조), 사라이를 사라라(창세 17,15 참조), 야곱을 이스라엘(창세 32,28-29 참조)이라 새로 이름을 부르신 분임을 보여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레아가 그러하였듯이(참조; 창세 29,32; 30, 11.13.18.20)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 주는 것은 성조들의 관습이었습니다. 까닭도 없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이름을 통하여 하느님의 선하심을 상기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그 이름으로 불릴 때마다 이름 안에 담겨 있는 예언을 그 사람 안에 완전한 기억으로 새기려는 것이었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성인 / 영적 글 묵상
말씀의 불꽃(거룩한 독서(Lectio Divina)에 관한 이야기 / 프랑스와 까생제나-트레베디
우물을 파라, 사다리를 올라가라!
거룩한 텍스트의 연구에 접근하며 가져야 하는 마음 자세는 무엇보다 먼저 성 아우구스티누스로 하여금 이렇게 감탄하도록 이끈 성경의 측정할 수 없는 깊이에 대한 의식이다:
“심오한지고, 당신의 말씀, 그 거죽은 우리가 보기에 어린이들조차 솔깃해지는 것 같으나 주여, 오묘한 깊이니이다. 깊은 오묘함이니이다. 엿보기조차 두려운 일입니다만 이것은 존영에 떪이요. 사랑에 떪이로소이다”(66)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1월 영적 수련 성월 3주간 감사/찬양
금주간 성서읽기 요한 8-10장
금요일 성인의 날
영적 삶의 샘(디다케에서 아우구스티노까지), 요한 봐이스마이어 외 지음
디오그넷 편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질문
하느님께선 이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셨다네. 그러나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듯이 폭력을 휘두르거나 공포와 위협을 가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네. 아니, 결코 그렇지 않다네. 그보다 하느님은 그분을 부드럽고 다정하게 보내셨네. 마치 왕들이 그들의 이들들을 보내듯이 말일세. 하느님은 하느님으로 그분을 사람들에게 보내셨네. 참된 구원자로 말일세. 사람을 외부로부터 강압하는 존재가 아니라 부드럽게 인도하는 자로 그분을 보내셨다네. 하느님은 그 누구도 강압하지 않으신다네. 하느님께선 그분을 위협하는 자로 보낸 것이 아니라 이름을 부르는 자로 보내셨고, 심판자로 보낸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내셨다네. 그러나 언젠가는 하느님께서 그분을 심판자로 보내실 것일세. 그러면 어떤 사람이 그분 앞에서 견뎌낼 수 있을까?
세상 사람들은 주님을 버리고 배교하도록 그리스도인들을 맹수 우리에 던져 넣었지만 그들이 결코 주님올 버리지 않고 끝까지 견뎌 나가는 것을 자네는 보았을 걸세. 사람들이 그들을 죽이면 죽일수록 그들의 수는 더욱더 블어나는 것을 보았을 걸세. 이것은 인간의 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힘으로, 하느님께서 계신다는 증거로 이루어지는 일이라네.(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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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수도회 한국관구
에페소 기도의 집
☨에페소 기도의 집은 순례와 피정을 통한 에페소 성모님 성지 보존과 중동평화와 난민을 위한 기도를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