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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르티노의 외투와 거지 : 엘 그레코(1597)

by 이종한요한 posted Feb 0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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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성 마르티노의 외투와 거지

   가 : 엘 그레코(1597)

   기 : 캠퍼스 유채 193 X 103cm

소재지 : 미국 워싱턴 국립 박물관


성인이라는 현상은 종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수행을 통해 적어도 범인이 접근할 수 없는 고귀한 인품에 이른 사람이나 더 나아가서 기적까지도 행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기도 하는데, 우리나라의 대다수 개신교는 “오직 예수”라는 기치로 성인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가톨릭 교회는 개인적 수행 외에도 하느님의 특별한 은혜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성인도 공경하는데 예를 들어 사도 바오로를 들 수 있다. 그는 크리스챤이 아님은 물론 예수님에 대한 깊은 증오심을 지니고 있었기에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기 위해 다마스쿠스로 가는 여정에서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회심했다.


또한 동방 정교회, 성공회, 개신교 중에서도 루터교에서는 성인의 존재성을 인정하며 공경하고 있다. 그 중 감동적인 것은 런던에 있는 웨스터민스터(Westminster) 성공회 대성당이다.


입구 벽에는 여느 고딕 대성당처럼 여러 성인들의 부조가 있는데, 놀라운 것은 거기에는 성공회 성인들만 아니라 가톨릭 성인인 성 막시밀리아노 콜베, 에디트 슈타인과 말틴 루터 킹 목사 같은 사람다운 삶을 살기에 꼭 필요한 인간적 가치를 위해 목숨까지 바친 분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대단한 예언적 시도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성인은 종교성의 차원에서 최고의 경지를 이른 사람을 표현하는 것인데, 이 면에서 가톨릭교회는 참으로 자랑스럽고 깊이 있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가톨릭 교회는 성인을 통해 그 시대의 영성을 표현하고 있는데 오늘 소개하는 마르티노 성인은 교회가 로마 제국으로부터 신앙의 자유를 얻었던 4세기 성인으로서 가톨릭 교회의 방향이 초 세기부터 얼마나 건강한지를 보여 주는 좋은 성인이시다.


가톨릭 교회는 성인들로 그 시대에 꼭 필요한 복음의 증인으로 존경하고 있는데, 마르티노 성인은 교회가 로마의 종교 박해를 이기고 처음으로 종교 자유를 얻었을 때 한마디로 교회가 새 출발 할 때 공경 받던 성인이었기에 교회의 건강한 방향성 제시에 큰 증거를 보이신 성인이시다.


교회가 종교의 자유를 얻었을 당시 크리스챤들은 사회의 천시와 박해를 받던 천민의 신분에서 국가가 인정하는 종교를 믿는 신분 상승 과정에서 크리스챤들은 우쭐해지면서 자기의 분수 확인에 혼란이 올 수 있었다.


교회 역시 로마적인 행정 체제를 도입해서 급속히 팽창하던 교회를 정비하다 보니 그리스도의 복음적 가치의 실현보다는 세력을 과시하는 것을 더 중요한 것으로 여겨 세속 권력과 대결할 수 있는 힘 있는 집단으로 변질 되고자 하는 유혹과 시행 착오의 과정을 겪어야 했다.


이런 시기에 성인의 행적은 그리스도교의 본질이 힘겨루기가 아니라 복음적 사랑의 실천이라는 것을 강조했다는 면에서 대단히 필요하고 유익한 것이었다.


성인은 316년 오늘의 헝가리에서 태어나 부모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앙에 귀의했다. 귀족 출신이었던 그는 당시 출세의 좋은 수단이었던 군대에 입대하기를 거부함으로 크리스챤이 지녀야 할 인간을 살상하는 전쟁을 합법화하는 사회에서 병역 거부를 통해 생명 존중이라는 크리스챤 양심을 정확히 표현했다.


이 작품은 성인의 생애 일화 중 거지에게 자기 외투를 잘라 준 사건으로 감동에 속하는 하나이다. 성인이 기사의 신분으로 있던 어느날 프랑스 아미엥 근처를 가다가 추위에 벌거 벗은 몸으로 떨고 있는 거지를 보게 되었다.


당시 전반적으로 가난한 사회 현실에서 이런 일을 비일비재한 너무도 흔하기에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일이었으나 예수님의 마음을 지녔던 마르티노 성인은 이 거지를 찬찬히 바라본 후 추위에 떨고 있는 거지에게 귀족의 상징과 같은 자기 외투를  선 듯 잘라 입혀주자 그 거지가 예수님으로 변했다는 감동적인 내용이었다.


마르티노의 이런 맑은 마음은 거지를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는 감동적이며 충격적인 체험을 하게 되었고 이것은 성인 당시 교회가 세속의 유혹을 이기고 건강한  신앙을 바르게 정착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교회가 유럽의 주류 종교로 정착되는 과정에서 많은 교회 지도자들은 세속 권력과 힘겨루기를 하면서 복음적 향기를 상실하기 시작했다.


의식 있는 성직자 외에 고위 성직자들의 생활은 더 없이 사치해지고 신자들 심지어 군주들과도 힘 겨루기를 하면서 거만을 떠는 신분으로 추락했으며 작가 엘 그레코가 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 성직자들이 풍기는 악취로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스페인 뿐 아니라 유럽 전체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복음적 향기를 잃었으며 교회의 부패를 반대해서 종교 개혁이란 이름의 비극적 분열이 시작되어 북유럽은 벌써 이들에 의해 점령당하고 작가가 살던 스페인은 신자들의 이탈을 막는다는 미명으로 종교 재판이라는 후세에 교황님이 온 인류를 향해 사과를 하는 부끄러운 역사로 이어지던 시기였다.


이런 현실에서 작가는 교회의 부패를 개선하면서 개신교도들의 세력을 꺾기 위해 시작된 반종교개혁의 선봉에 서서 예술을 통해 가톨릭 신앙을 정화하고 지키고자 노력했다.


이 작품은 당시 교회의 성직자들에게 귀감을 보이기 위한 의도로 제작했다. 작가는 일생 동안 그가 사랑하던 가톨릭교회의 신앙을 정화하고 교회를 옹호하는 예술가로서 성화를 제작했으며 많은 성화들이 성서나 성인들의 피상적인 모습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있는 참된 신앙을 전달하는 어떤 의미의 선교사나 시각적 설교자의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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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타고 가는 마르티노 곁에 어떤 벗은 거지가 있다. 거지는 벗기는 했으나 남루하거나 초라한 기색이 전혀 없는 기사의 화려한 복장을 한 마르티노와 벗은 것 외에 다른 차이는 없는 두 인간의 모습이다.


통상적으로 이런 설정이라면 부유하고 힘있는 모습의 기사와 헐벗고 주린 모습의 가련한 거지의 모습을 통해 관람자들에게 거지에 대한 동정심을 유발시킬 수 있는 것이 어울릴 것이지만 작가는 이런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의 설정을 했다.


작가가 거지와 기사라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하늘과 땅처럼 정반대의 신분을 입은 것과 벗은 것으로만 대비시킨 것은 르네상스 운동으로 일기 시작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에 대한 표현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르네상스 이전엔 귀족과 평민과 노예 신분이 분명히 구별되었으나 상인 계급들이 일어나면서 이들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학문 연구로 귀족도 노예도 하느님 안에 한 형제라는 인간 존엄성과 상호 인정이라는 파격적인 사고방식이 퍼지기 시작한 때였다.


마르티노가 군인으로 있다가 주교가 될 때 역시 그의 아름다운 행적이 드러나게 된다. 어떤 정치적인 야망이나 술수를 부림도 없이 평온한 삶을 살고 있는 그에게 그의 감동적인 인품과 신앙을 알아본 백성들이  도움을 청하는 척 하면서 그에게  주교가 되라고 유혹했다.


백성들의 이런 선의를 수용하고 371년 투르의 주교로 서임된 마르티노는 올바른 품행으로 투르 시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어 주교로서 호평을 받았다.


신자들의 이런 진심을 읽은 그는 주교직을 기꺼이 수락하여 30 여년을 심혈을 기울여 하느님 백성을 섬김으로 교회 역사상 주교직의 고귀성에 대한 전설적인 아름다움을 남겼다.


표현의 한계성 때문인가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천편일률적인 찬사로 도배되고 하느님 백성의 지도자들로 그들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선 정확한 표현을 하면서도 정작 현실 삶에선 하나의 공염불의 반복으로 끝나던 서글픈 시기가 있었다.


이런 갈등 속에서 교회가 부패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으로 복음은 말이나 글로서 전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성 마르티노를 등장시켰다.


마르티노의 행적은 어떤 복음에 바탕을 둔 미사여구의 문헌이나 강론 보다 더 생기 있고 진실한 감동을 사람들에게 주기에 교회 역사 안에서 쉼 없는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이런 모범을 그 시대에 맞게 실천하고자 하는 성직자들에 의해 면면히 이어지면서 교회의 모습을 새롭게 조명되면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모범을 보이는 실재의 좋은 감동을 주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말씀의 종교인데, 이 말씀 선포라는 것은 예수님의 언행을 알아 듣기 쉽게 풀이해서 전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행동으로 표현될 때 실현되는 것임을 알 때 마르티노 성인의 위상은 어떤 처지에서도 예수님의 현존을 세상에 알리는 좋은 증거가 되었다.


마르티노 성인의 삶의 행적을 그린 작품은 교회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의 실천이요, 그 중에서도 핵심은 관례적인 전례 집행이나 형식적인 행사 관여가 아닌 마태오 복음에 나오는 다음 말씀을 사목의 목표로 삼아 실천하는 것임을 성인의 삶은 증거하고 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네가 나그네 되었을 때 따뜻하게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 돌보아 주었다.”(마태 25:35-37)”는 말씀을 자기 외투를 잘라서 거지에게 준  성인의 행적을 통해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수용되었다.


이 작품은 과거 초대 교회 우리 교회가 지녀야 할 바른 방향 제시와 지도자 상만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오늘의 교회에서도 꼭 필요한 지도자상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빛바라지 않는 보석과 같은 복음적 지도자가 지녀야 할 핵심을 전하고 있다.


성 마르티노의 외투는 교회가 보존하고 있는 유명한 성유물 가운데 하나로서 그가 사목했던 투르 인근에 있는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으며 교회 역사에서 자랑스러운 삶을 살았던 목자상과 세속의 온갖 유혹 속에서도 교회를 세속 권력과 다른 복음적 권위의 살아있는 상징으로 남아있다.


이 외투를 보관 관리하던 사제를 카펠라누(cappellanu)라고 불렀는데, 이후 군대에 복무한 모든 사제를 가리켜 카펠라니(cappellani)라고 불렀고, 이와 비슷하게 성유물을 보관하기 위한 조그마한 임시 성당을 가리키는 용어를 카펠라(capella)라고 불렀다.


현대에 와선 이 외투의 언어적 의미는 더 확대 해석되어 하느님 경배의 장소를 일컫는 경당을 가리키는 영어 단어 채플(chapel)이 여기에서 유래하게 되었다. 이것은 성 마르티노의 외투가 주술적 의미나 과대 포장된 뜻으로서가 아니라 하느님을 증거하고 보일 수 있는 가장 힘 있는 복음의 증거임을 제시하는 것이다.


성 마르티노의 행적은 이렇게 깊이 있고 또 폭넓게 교회 안에 생존하면서 교회가 지녀야 할 참된 품위는 하느님 백성을 향한 진실한 사랑임을 알리고 있다.


현대에 와서 이런 삶의 산 모델은 몇 년 전 작고하신 프랑스의 피에르 신부가 있다 이분은 리옹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으나 예수님의 모범을 따르기 위해 모든 재산의 상속권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는 그 시대에 해야 할 일에 대단한 투신의 모습을 보였다.


독일의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잡아 가스실로 보내 학살할 때 그는 유대인들을 몰래 숨겨서 탈출시키는 일을 했고 2차 대전 이후 프랑스에 무주택자가 늘어갈 때 그는 개미 마을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무주택자와 가난한 자들에 대한 헌신하였고, 그 후 교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을 때 그는 눈총을 받으면서도 쓴 소리도 마지 않았다.


과거 교회의 맏딸이라고 불리던 프랑스 역시 교회의 세속화와 더불어 잘못된 교회의 처신으로 많은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 썰렁할 때 프랑스 젊은이들은 프랑스에 희망을 줄 수 있는 10명의 인물 중에 항상 피에르 신부를 포함시킴으로 교회에 희망의 불씨가 있음을 증거 했다.


얼마 전에도 일반 프랑스 시민들을 상대로 한 자랑스러운 프랑스인 3명이 뽑혔다. 드골 장군, 라듐을 발견한 퀴리부인, 그리고 피에르신부였는데, 이것은 겉으론 사향길을 걷는 것처럼 보이는 가톨릭 교회에는 아직도 성 마르티노가 살아계시다는 희망의 증거이다. 


우리나라에도 한국 전쟁 이후 비참한 시기에 이 땅에 선교사로 와서 교회로부터 냉대와 오해를 받으면서도 이 땅에 버려진 청소년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다가 이 사업이 이제 가난한 이웃 나라에 까지 전파되어 대단한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소 알로이시오 신부님이 창설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키우는 사업 역시 마찬가지인데 신부님은 이런 말씀으로 비참한 환경에서 희망의 씨앗이 자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 세상에서 단 한명이라도 굶주리는 사람이 있다면 곧 그리스도께서 굶주리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소 알로이시오 신부


이런 관점에서 성미술은 단순한 교회의 중요한 장식 요소가 아니라 진리의 현학적 표현에 너무 식상한 현대인들에게 복음의 생기 있는 감동을 전할 수 있는 복음하의 효과적인 도구이다.


현대에서 여려 교황님들이 성 미술의 중요성으르 강조하신 것은 성화는 성 마르티노의 외투처럼 시각적 감동을 줄 수 있는 감동임을 확인하고 강조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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