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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소금으로 간을 맞춰라

by 이마르첼리노M posted Feb 2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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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소금으로 간을 맞춰라

 

믿음은 옳거나 우월하다는 것을 주장하는 도덕적 경주가 아니다.

잘 보이려고 포장하거나 드러나는 것보다 눈에 띄지 않는 것에 만족하는 삶의 방식이다.

성취의 원리로 작동하는 동기들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계획에 동의하는 것이고

보이지 않고 무한하신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이 만든 성취의 틀, 곧 규모를 크게 만들고 양을 늘리며 속도를 높여

생산성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믿음은 마음의 소금으로 간을 맞추어(마르 9,50)

세상의 생명을 위해 자신의 살을 내어주는 것이며. (요한 6,51)

어머니가 자녀에게 젖을 주는 것이고 (이사야 49,15)

암탉이 날개로 병아리들을 덮는 것이다. (루가 13,34)

어머니가 자녀들을 사랑하고 돌보는 것처럼 자녀들의 필요를 말없이 채우고

따뜻하게 사랑하고 돌보는 삶이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의 자비와 선하심이 나를 통하여 너에게로 흘러가도록

말없이, 보이지 않게, 겸손하고 단순하게 사는 삶의 방식이다.

우리의 모든 이해와 경험에 단순성과 심오함의 차원을 부여해 주는 삶이라는 말이다.

 

마음의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는 것은 를 위해 내어주는 몸과 쏟는 피의 실제다.

받은 사랑에 대한 응답의 현장에서 를 돌보기 위해 시간과 돈과 정성을 쏟아붓는 것과

관계성 안에서 나오는 십자가를 받아들이기 위해 흘리는 피다.

우리는 미사를 거행할 때마다 제대 위에서 이를 목격한다.

그분을 받아 모신다는 것은, 나도 그렇게 살겠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식사는 모성적이다. 따뜻하고 맛있게 먹여주려는 어머니의 생명을 나누는 것이다.

식탁은 먹이고 치유하는 식탁이지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차별하는 자리가 아니다.

주님의 식탁은 결코 소수의 사람을 위하거나 엘리트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빵은 만인을 위한 것이다.

마음에 드는 사람만 초대하여 끼리끼리 나누는 식사가 아니다.

돌려받지 못할 사람을 초대하는 자리다.

우리는 별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배제 시키고 심판하기 위해서

성만찬을 이용해 왔다는 슬픈 현실을 경험했다.

영성체를 하는 사람들은 가치가 있고 죄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편견과

자신들은 깨끗하다고 여기는 자만심이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배반할 유다와 베드로에게도 음식을 나누어 주셨다.

누군가를 배제하고 제한하는 조치들은 성만찬의 음식을 더럽힌다.

성만찬은 완전한 사람들을 위한 식탁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우쭐하게 하는 식사는 생명을 해친다.

 

최선의 것이라고 여기던 것이 부패하면 최악의 결과를 초래한다.

교회 공동체들의 믿음의 현장에 가보면 통제와 지배의 현상들이 즐비하다.

자기가 첫째이며, 첫째라고 생각하기에 통제하고 자신이 옳다는 것을

타인이 인정하도록 반응을 조작하는 모습을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다.

기쁨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자기중심적 실상을 보는 것이다.

 

요한복음에서는 발을 씻어주는 행위가 만찬을 대신하는 것처럼 묘사되어있다.

발을 씻어준다는 것은 자신의 몸을 굽혀 상대방의 아래에 자신을 두는 것을 의미한다.

진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행동하는 것이다.

마음의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는 것은 관계를 살피라는 말이다.

누군가를 돌보기 위해서 이 지닌 힘으로 내적인 믿음을 회복하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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