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책이 대책
프란치스칸 삶의 중심에는 하느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내어드리는 가난과
아무것도 자신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하느님의 손길에 맡겨드리는 겸손이 있습니다.
자신을 하느님께 온전히 내어 맡긴 채 살아가는 생활방식입니다.
온전히 아버지께 맡겨진 자유는 그분의 손에 들려 육화의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가난과 겸손은 무대책이 대책이라는 삶의 방법이었습니다.
어떠한 특권도, 권리도, 보장도 없이 살아가는 생활방식입니다.
삼위일체 사랑에서 나오는 아버지의 돌보심을 알기 때문에
대책이 없어도 희망이 있으며 대안이 없어도 불안이 없는 삶입니다.
모든 유혹과 악의 근원에는 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없음을 사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큰일입니다.
몸의 요구와 마음의 요구가 힘으로 상징하는 독점과 소유를 탐내고
눈앞의 이익과 편안함과 즐거움만을 찾으려는 집착과 경쟁 속에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상대방을 이용하려 들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여 누군가를 지배하려는 쪽에 무게를 두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앞에 무력하고 연약한 나를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겸손만이
나를 중심으로 삼으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없음’이 주는 믿음,
위로부터 받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진실을 받아들일 때
없음이 주는 무력감과 비참함을 굽어보시고 아버지의 자비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내가 없는 땅에는 오직 그분만이 남아 계시며 그분께서는 나를 홀로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사랑과 희망이 정착할 땅, 내 믿음이 정착할 땅은 거기에 있습니다.
그곳은 광야이고 사막이며 황무지입니다.
그곳에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모든 관계는 광야이며 황무지입니다.
내 안에서 기쁨을 찾는 것은 어렵습니다.
관계 안에서 기쁨을 찾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찾는 것은 아예 불가능합니다.
사랑은 내적으로 숨겨진 것을 밖으로 확장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선하신 하느님으로부터 받는 사랑에 응답하기 위해 너에게 다가가는 방식입니다.
자신에게 매우 소중한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면
가난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유하게 되는 삶이며,
혼자만 가지면 기쁨을 느낄 수 없는 보물입니다.
이 소리도 아닙니다.
저 소리도 아닙니다.
사랑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그 아찔한 사랑을 대면하면 소리를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얼굴로 주변을 밝히는 거울이며
작음과 단순성 안에서 피어나는 기쁨의 꽃입니다.
들짐승들과 새들이 물을 찾듯이 사랑은 물처럼 기쁨으로 생명을 먹입니다.
좋은 음식은 좋은 사람과 나눌 때 깊은 맛을 냅니다.
음식의 맛보다 즐거움을 나누는 기쁨이 크기 때문입니다.
나에게서 내가 해방되어 내가 사라진 땅에서 그분만이 유일한 희망으로 남을 때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내어줄 수 있습니다.
주고 또 주어도 내어 줄 것이 있는 보물창고가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무대책이 대책인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