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것이다.”
오늘 창세기는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선과 악을 알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선과 악을 몰랐었는데 알게 된다는 것이지요.
악을 알게 하는 선.
제가 오늘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다음 그것을 보고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눈에 모든 것은 당신 원하신 대로 된 선들입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도 이 선들에서 악을 알지 못했습니다.
뱀이 따 먹지 못하는 나무의 열매가 있음을 일깨우기 전까지는
이 선들에서 도무지 악을 알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악마는 참으로 교묘합니다.
가지지 못하게 금한 것,
그래서 가질 수 없고,
그래서 못 가진 것을 일깨웁니다.
그런데 우리가 못 가진 선을 보고 못 가진 것이 있음을 깨닫는 순간,
못 가진 선에 대한 소유욕이 생기고,
못 가진 선에 대한 소유욕이 생기는 순간,
지금까지 가지고 누리던 선은 악으로 둔갑합니다.
본래 악인 것이 아니라 악으로 둔갑한 것입니다.
본래는 하느님께서 보시고 좋다고 하신 선인데
우리의 눈에서 선이 악으로 둔갑한 것입니다.
우리의 눈이 어떻게 됐기에?
악마가 우리 눈에 어떤 짓을 했기에?
악마가 한 것은 간단합니다.
못 가진 것을 살짝 일깨우고
못 가진 것에 대한 소유욕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요즘 새로운 휴대전화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전화 받을 수 있고 글자가 크게 보이기만 하면 그만인 저에게는
그런 것들이 아무런 소용이 없고 그래서 관심도 없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새로운 것이 나오면 새 것에 솔깃하고,
새 것을 보고 나면 그것을 사고 싶어 합니다.
새 것을 갖고 싶은 순간 헌 것은 버려야 할 것이 되고,
새 것이 좋아지는 순간 헌 것은 싫증이 나며
그래서 지금까지 내내 좋았던 선은 싫은 것, 곧 악이 됩니다.
아이들에게 왜 그리 장난감이 많습니까?
새로운 장난감을 보기만 하면 하도 떼를 쓰기에
사주지 않을 수 없어 사주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지요.
그때 엄마가 얘기합니다.
집에 장난감이 많은데 왜 또 사달라고 하니?
그거 지금까지 잘 가지고 놀았지 않니?
네가 가진 것이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인데 무엇 하러 또 사니?
그때 아이는 대답합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이것은 이것이 나쁘고,
지금 가지고 있지 않고 그래서 가지고 싶은 저 것은 저것이 좋다고.
못 가진 것을 보는 순간 소유욕이 생기고,
소유욕이 생기는 순간
소유하고 싶은 것은 좋은 것, 선이 되지만
이미 소유한 것은 싫은 것, 악이 됩니다.
새 것을 소유하기 위해 헌 것은 버려야 하고,
버리기 위해서는 헌 것은 싫은 것, 악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그 좋은 것들을 쓰레기로 만드는 이치가 이것이고,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을 우리가 미워하는 이치도 여기 있습니다.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것이다.”
오늘 창세기는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선과 악을 알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선과 악을 몰랐었는데 알게 된다는 것이지요.
악을 알게 하는 선.
제가 오늘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다음 그것을 보고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눈에 모든 것은 당신 원하신 대로 된 선들입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도 이 선들에서 악을 알지 못했습니다.
뱀이 따 먹지 못하는 나무의 열매가 있음을 일깨우기 전까지는
이 선들에서 도무지 악을 알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악마는 참으로 교묘합니다.
가지지 못하게 금한 것,
그래서 가질 수 없고,
그래서 못 가진 것을 일깨웁니다.
그런데 우리가 못 가진 선을 보고 못 가진 것이 있음을 깨닫는 순간,
못 가진 선에 대한 소유욕이 생기고,
못 가진 선에 대한 소유욕이 생기는 순간,
지금까지 가지고 누리던 선은 악으로 둔갑합니다.
본래 악인 것이 아니라 악으로 둔갑한 것입니다.
본래는 하느님께서 보시고 좋다고 하신 선인데
우리의 눈에서 선이 악으로 둔갑한 것입니다.
우리의 눈이 어떻게 됐기에?
악마가 우리 눈에 어떤 짓을 했기에?
악마가 한 것은 간단합니다.
못 가진 것을 살짝 일깨우고
못 가진 것에 대한 소유욕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요즘 새로운 휴대전화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전화 받을 수 있고 글자가 크게 보이기만 하면 그만인 저에게는
그런 것들이 아무런 소용이 없고 그래서 관심도 없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새로운 것이 나오면 새 것에 솔깃하고,
새 것을 보고 나면 그것을 사고 싶어 합니다.
새 것을 갖고 싶은 순간 헌 것은 버려야 할 것이 되고,
새 것이 좋아지는 순간 헌 것은 싫증이 나며
그래서 지금까지 내내 좋았던 선은 싫은 것, 곧 악이 됩니다.
아이들에게 왜 그리 장난감이 많습니까?
새로운 장난감을 보기만 하면 하도 떼를 쓰기에
사주지 않을 수 없어 사주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지요.
그때 엄마가 얘기합니다.
집에 장난감이 많은데 왜 또 사달라고 하니?
그거 지금까지 잘 가지고 놀았지 않니?
네가 가진 것이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인데 무엇 하러 또 사니?
그때 아이는 대답합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이것은 이것이 나쁘고,
지금 가지고 있지 않고 그래서 가지고 싶은 저 것은 저것이 좋다고.
못 가진 것을 보는 순간 소유욕이 생기고,
소유욕이 생기는 순간
소유하고 싶은 것은 좋은 것, 선이 되지만
이미 소유한 것은 싫은 것, 악이 됩니다.
새 것을 소유하기 위해 헌 것은 버려야 하고,
버리기 위해서는 헌 것은 싫은 것, 악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그 좋은 것들을 쓰레기로 만드는 이치가 이것이고,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을 우리가 미워하는 이치도 여기 있습니다.
善 이요 행복의 길을 걷는 것이라 생각 합니다.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죽음을 부른다는
말이 있듯이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 바로 지혜이고 행복임을
다시 한번 마음에 되새기면서
예전에 하도 버리는 것을 좋아하는
저에게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
"아무게야!, 헌것이 있어야 새것도 있단다."
라고 하셨던 어머니가 한없이 그립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