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
우리가 어제와 오늘 읽는 복음은 주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시며
제자들을 위해 아버지께 청하는 그 유명한 대사제의 기도인데
계속되는 청원 중의 하나가 제자들이 하나 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입니까?
제 생각에 이것은 너무 터무니없는 청 같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이 하나 되려는 마음조차 없습니다.
하나 되고 싶은 마음조차 없다는 말이고,
하나 되는 것이 오히려 싫습니다.
그렇다면 하나 되는 것이 왜 싫을까요?
첫째는 그 사람이 싫기 때문입니다.
싫은 사람하고 하나 되고 싶지 않은 것인데
그 사람이 싫은 이유가 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마음에 들거나 들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을 내 마음에 들이는 것이 내키거나 내키지 않는 것인데
좋아하는 사람은 내 집안에 들이고 싫어하는 사람은 들이지 않는 것과 같이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가 되기 싫은 두 번째 이유는 이 자기를 버리기 싫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기란 수 없이 많은 요소,
예를 들어 자기 취향, 자기 기호, 자기 입맛 같은 것들로 이루어졌고,
입맛도 자기 입맛이 있어서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먹기 싫습니다.
그러니 자기 입맛을 버리면 뭐든지 먹을 수 있는데
프란치스코처럼 자기 입맛을 버리기 위해
음식에 물을 타거나 재를 탈 마음이 있으면 되는데
우리는 그 자기 입맛을 버리기 싫은 겁니다.
이런 상태를 프란치스코는 유언에서 죄의 상태라고 했고,
나병 환자를 보는 것조차 싫은 것이 죄 중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 좋고 싫음을 버리자 쓰디쓴 맛이 달콤한 맛으로 바뀌며
나병 환자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었고 껴안을 수 있었던 것이고,
이 맛의 포기와 변화의 시점을 회개의 시점이라고 프란치스코는 말하지요.
그러나 우리가 잘 알다시피
하나 되기 싫은 근본적인 이유는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고,
사랑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미워하는 그런 사랑법 때문이니
우리는 이런 사랑법을 바꿔야 하는데 이 또한 좋고 싫음을
버리거나 초월해야 사랑할 수도 하나 될 수도 있음을 깊이 성찰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