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에 읽은 두 번째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민족에 상광없이 그리고 신분에 상관없이 우리가 모두
한 성령 안에서 한 몸이 되었다고 단언을 합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민족과 사람들이 하나가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현실을 보면 사도의 단언처럼 하나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사도의 공동체처럼 하나가 되지 못한 것입니까?
오늘 서간은 그것이 한 성령 안에 우리가 있지 않고
한 성령을 받아 마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사도의 교회가 처음부터 하나가 된 것이 아니고
성령을 받고 난 뒤에도 할례나 음식 문제로 갈라질 뻔하기도 했지요.
그러므로 지금의 우리도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도들의 교회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주목을 하는 것은 오늘 사도행저의 다음 말씀입니다.
“오순절이 되었을 때 사도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한자리에 모여 있었기에 한 성령을 받게 되었고,
한 성령을 받았기에 한 몸이 되는 연쇄적인 과정의
그 첫 번째 과정이 바로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인 셈입니다.
천릿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말이 있는데
천릿길의 그 한걸음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고,
하나가 되고 싶은 갈망과 의지로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제가 자주 얘기하는 내용이지만
하느님의 은총은 인간의 갈망과 의지 위에 꽃피는 것입니다.
요즘처럼 하나 되고픈 갈망이나 의지느커녕 서로를 두려워하고 거부하고
밀어내는 상황에서는 하느님께서 아무리 일치의 은총을 주시려고 해도
주실 수 없을 겁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 공동체처럼 한마음, 한 뜻의 완성된 공동체가 되려면
하나가 되고픈 마음이 우선 각자에게 있어야 하고 또 그 마음이 모아져야 하는데
모여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런 마음의 표시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도 모여 있었습니다.
실망하고 모두 흩어졌을 수도 있었는데 모여 있었던 것이고,
그런 제자들에게 주님이 나타나셔서 평화를 주시고 숨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숨을 불어넣어 주실 때 그걸을 같이 들여마신 것을
오늘 바오로 사도는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다고 합니다.
숨을 들이기는 것이 아오스딩 성인의 말대로 바로 기도인데
우리의 들숨이 서령을 마시고 날숨이 악령을 내쫓는 것이 되어야 하고
제자들처럼 같이 성령을 받아 마시는 것이 공동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할 때 맨손 체조로 하루를 시작하고
체조의 마지막 동작이 숨쉬기인데 그때 앞에서 구령을 부쳐주면
그 구령에 따라 같이 숨을 들이키고 내쉽니다.
이 숨쉬기의 구령을 주님께서 부쳐주시고,
그 구령에 따라 성령의 들숨과 나숨을 쉬는 우리 공동체가 되고
우리의 공동 기도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바람을 가져보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