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심판하지 마라."
남을 심판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이 말씀대로 심판하지는 않겠는데
그것이 판단까지 하지 말라는 것이면 어떻게 그렇게 살아가나 하는 생각은 듭니다.
그래서일까 옛날 번역은 판단하지 말라고 번역한 것을
새 번역에서는 심판하지 말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제 생각에 판단은 하되 심판 또는 단죄를 포함한
오판은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잘못 판단하지 말라는 것은
잘 판단하라는 얘기이고 잘 판단하는 것은 괜찮다는 뜻이 아닙니까?
사실 저의 주장이 그렇습니다.
모든 판단이 나쁘고 모든 판단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떤 판단이 하지 말아야 할 판단이고
어떤 판단이 해도 되거나 해야 할 판단입니까?
우선 그의 장단점을 모두 보고 판단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입니다.
교만에서 비롯되었든 시기심에서 비롯되었든 무조건 그를 안 좋게 보려는
마음의 작용이 있기 때문에 그의 장점은 보지 않고 단점만 보는 경우입니다.
그런가 하면 무조건 좋게만 보려는 마음의 작용도 있습니다.
이것은 소유욕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데
무엇을 소유하려는 욕심 때문에 무조건 좋게 보는 것입니다.
결혼하기 전의 사람들이 흔히 그런 잘못을 범합니다.
어제 결혼을 앞둔 예비 부부들을 만났는데 그들에게
상대의 단점을 적어도 다섯 개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콩깍지가 씌어서 좋은 점만 보이고
결혼한 뒤에 안 좋은 점이 막 드러나 문제잖습니까?
그래서 결혼하기 전에는 두 눈을 다 뜨고 보고
결혼한 뒤에는 한 쪽 눈만 뜨고 보라는 말이 있지요.
그러나 장단점의 오판은 그래도 양반입니다.
더 큰 문제는 선악의 오판에서 비롯된 단죄입니다.
이것은 그의 장단점 한 부분을 잘못 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존재 전체를 선악의 관점에서 보고 단죄까지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바리사이나 율사들을 보고 자주 비판하셨듯이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교만한 사람들이 자기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는 악만 보고 죄인으로 단죄하지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것이 자기 눈의 대들보는 안 보고
남의 눈의 티끌을 보는 거라고 오늘 말씀하십니다.
영적 도덕적 교만이야말로 더 큰 악이고 죄라는 말씀이고,
다른 것들은 죄가 아닌 허물이거나 죄일지라도 작은 죄라는 말씀입니다.
이것들이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오판이라면
해야 할 올바른 판단도 있습니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한 사랑의 판단입니다.
의사가 병자를 살리려면 무슨 병인지 정확히 판단하고 처치해야 하듯
겸손과 사랑으로 그의 영적인 상태를 정확히 판단하고
역시 겸손과 사랑으로 적절한 영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경우 남의 잘못이나 죄에 대해 분노하며 지적질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마음 아파하고 기도해주며 필요하다면 겸손과 사랑으로 충고를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판은 하지 말고 올바른 판단은 하라는 말로
오늘 주님 말씀을 바꿔듣고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