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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수요일 다음 금요일- 단식, 무욕의 사랑을 위하여

by 당쇠 posted Mar 1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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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왜 단식을 하는가?

단식의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
살을 빼기 위한 단식에서부터
Hunger strike까지 현실적인 이유로 단식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보다 좀 더 고상한 단식도 있겠습니다.
개돼지처럼 먹는 것에 환장이 들린 사람이 되지 않고
본능적인 욕구(欲求)를 초월한 사람이 되고자 단식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본능적인 욕구를 초월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본능적인 욕구를 초월한 사람이 되어 있는
그런 자신에 만족하기 위해서 단식할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하지요.
단식이란 欲이 생기지 않도록 欲求를 들어주지 않는 것인데
욕구를 초월한 자신에 대한 고차원적인 만족을 위해서
식욕을 채우는 저차원의 만족을 희생하는 것일 뿐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고상한 탐욕을 채우는 만족이나
식욕을 채우는 만족이나 자기만족인 것은 마찬가지고,
어쩌면 고상한 탐욕을 채우는 만족이 식욕을 채우는 만족보다
하느님께서 더 역겨워하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이사야가 질책하듯 고상한 척 하지만
속은 온갖 탐욕으로 가득 차 있고
그 탐욕을 채움으로써 만족하려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만복감, 포만감으로 참된 만족이 대리 만족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된 만족은 아무리 고상할지라도 그런 것들로 대리 만족될 수 없습니다.
왜냐면 만족은 어떤 욕이든,
욕을 구하지 않을 때 참되고
욕을 버릴 때 완전하며
사랑 때문에 욕을 구하지 않을 때 더 참되고
사랑 때문에 욕을 버릴 때 더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그럴 수만 있다면
이웃을 진정 사랑할 때
그래서 이웃을 참으로 만족케 할 때 욕은 올라오지 않고
하느님을 진정 사랑하면 욕이란
저 속에서부터 아무런 낌새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를 너무도 완벽하게 만족시키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께 대한 우리 사랑이
욕을 너무도 완벽하게 틀어막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단식이란 무욕한 사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기 위해서,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우리 집에 맞아들이기 위해서,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기 위해서
우리는 이번 사순절에도 단식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식탁 옆에
굶주리는 이웃을 위한 돼지 저금통,
특히 북한의 굶주리는 이들을 위한 돼지 저금통이 놓여있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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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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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지금 2011.03.11 14:36:25
    때로는 모든것이 넘쳐서 불행한 우리들
    부족할때는 부족해서 나누었는데
    넘치는 지금은 버릴 망정 나눌줄 모르는
    이 시대의 얼굴들입니다
    과연 얼만큼 나누며 살았나 반성해봅니다
  • ?
    홈페이지 요셉 2011.03.11 14:36:25
    그렇습니다.

    나는 왜,단식을 하는가!
    라는 물음을 순수한 양심에게 물어야 겠습니다.

    "어쩌면 고상한 탐욕을 채우는 만족이 식욕을
    채우는 만족보다 하느님께서 더 역겨워하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라는 말씀이 비수처럼 제 가슴을 관통하기에 말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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