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 형제, 눈을 뜨십시오.’
오늘은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축일, 바오로 사도의 축일에
바오로 사도에 대해 아무런 칭송을 마시라고 말씀드립니다.
바오로 사도의 회심에 바오로 사도가 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무슨 심한 말입니까?
회심을 한 것은 바오로 사도이지 하느님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회심을 한 것 아니고,
하느님이 회심을 하신 것 더더욱 아닙니다.
회심을 하였다면 그것은 바오로 사도가 한 것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자신의 회개에 바오로 자신이 한 것은 없습니다.
그 뜻은 바오로 사도가 애초에 회개할 마음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는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지 않았고,
오히려 조상들이 믿어온 하느님을 잘 믿고 있고,
조상들이 지켜온 율법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개입하지 않으셨으면
바오로 사도도 프란치스코처럼 회심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회심을 하였다고 해서 바오로 사도를 칭송할 필요 없습니다.
바오로 사도를 칭송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찬미 찬송해야 합니다.
그러면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은 왜 지내는 겁니까?
이미 하느님을 열심히 믿었는데 무슨 회심을 하였다는 겁니까?
바오로 사도는 땅에서 하늘로 마음이 향하는 회심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회심은 반대로 하늘에서 땅으로 향하는 회심을 한 것입니다.
그는 하늘의 하느님을 열심히 믿었지만
그 하늘의 하느님이 이 땅에 오셨음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스테파노가 영의 눈으로 하늘이 열렸음을 보고
거기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인다고 했을 때
바오로 사도는 그 스테파노를 죽이는 일에 가담하였습니다.
영의 눈이 멀었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 잘하는 거라고 믿은 겁니다.
그러다가 이런 그의 눈을 하느님께서 뜨게 하시어
이제 땅으로 오신 하느님을 보게 되고 믿게 된 것입니다.
이 회심 축일을 지내며 우리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도 하느님을 믿기는 하는데
그 하느님이 아직도 여전히 하늘에만 계시고
내 삶 안에 들어와 계심을 못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습니다.
지금 나의 삶 가운데 하느님께서 계심을 못 보고
지금 나에게 퍼부으시는 하느님 사랑을 못 느낀다면
우리는 회심전의 바오로 사도처럼
하느님의 육화를 믿지 못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 와 계신 하느님을 눈으로 보고
그분의 부드러운 사랑을 마음으로 느끼는 하루가 되도록 합시다.
발상의 전환을 하게 만드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