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오늘 주님께서는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이 하는 일은 다 보이기 위한 것이라고,
그러니 그들이 하는 말은 실천하되 닮지는 말라고 아주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오늘은 보이기 위해 사는 삶의 불행에 대해서 성찰하고 반성코자 합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무엇을 하는 이유는 말장난 같지만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고 칭찬받기 위해서고
더 나아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기 위해서며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 사람은 행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첫째는 그런 칭찬과 사랑과 존경을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설사 받는다고 할지라도 그런 사람과 그런 행복은
남에게 의존하는 인생이고 남에게 좌우되는 행복이기 때문이며,
셋째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칭찬과 사랑과 존경을 받기 위해 보이는 행동을 하지만
실제로는 받지 못하는 불행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됨됨이가 그렇지 못한데 잘 보이려고 할 경우, 우리는 대번에 그것을 알아봅니다.
우리가 흔히 ‘못된 놈’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되지 못한 놈이라는 뜻이고,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되다 만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못난 놈’은 더 심한 경우입니다.
태어나기를 제대로 태어나지 못했기에 됨됨이가 부실하다는 뜻입니다.
태어나기를 작은 키로 태어났는데 멋있게 보이기 위해
굽이 높은 구두를 신었다 해도 그것을 멋있게 보지 않지요.
키 작은 열등감의 표시밖에 되지 않으니 오히려 안쓰럽습니다.
더 멋있는 것은 키 작은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당당함이고,
나폴레옹처럼 비록 키가 작아도 다른 면에서 뛰어난 것입니다.
그러니 잘 보이기 위해 겉으로만 그렇게 하는 것은
됨됨이가 제대로 난 놈이든지 된 놈이어야 하는데
그렇게 됨됨이를 바꿀 기회를 놓치게 할 뿐입니다.
다음으로 그렇게 하여 칭찬과 사랑과 존경을 받을지라도 불행한 경우입니다.
칭찬과 사랑과 존경을 남에게 받아야 행복한 사람은
그의 행복이 다른 사람의 칭찬과 사랑과 존경에 좌우되는 사람입니다.
많은 경우, 이런 사람은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아 불행한 것을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아 행복한 사람이 되려는 것이요,
자존감은 없으면서 다른 사람의 존경을 받아 행복한 사람이 되려는 것입니다.
옛날 어른들이 자중자애하라고 할 때의 그 자중자애,
곧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남에게 잘 보이려는 것보다 더 행복의 길입니다.
그런데 더 나은 행복의 길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소중히 여기시기에
내가 나를 존중하고 사랑한다면 그것이 최고의 행복입니다.
그러니 자기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사랑하신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여 사람의 사랑이나 받으려고 하고,
또 그래서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은 그것이 비록 죄는 아닐지 몰라도
그에게는 불행이고 가여움임을 묵상하는 오늘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