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다가
독서를 가지고 저를 성찰하고 여러분과 나눔을 할까,
복음을 가지고 저를 성찰하고 여러분과 나눔을 할까, 잠시 고민했습니다.
이렇게 고민할 때면 저는 종종 고민에 머물지 않고 주님 앞에 잠시 그냥
머물곤 하는데 오늘도 그렇게 좌정하고 있었더니 즉시 실마리가 풀렸습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께서 불행하다고 선언하시는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가 바로
오늘 바오로 사도가 얘기하는 육에 이끌리는 사람이라고 연결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육이란 무엇이고,
육에 이끌리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가 관건인데
육에 이끌리는 사람이란 하느님 앞에 있지 않고 사람들 앞에 있는 사람,
그 전에 당연히 하느님 나라를 지향하지 않고 이 세상을 지향하는 사람,
하느님이 아니라 사람에게 칭찬과 영광을 받으려는 자라는 답이 나왔습니다.
이에 대해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형제들이여, 우리 모두 온갖 교만과 헛된 영광을 조심합시다.
그리고 이 세상의 지혜와 육의 관심사에서 우리 자신을 지킵시다.
실상, 육의 영은 영의 내적인 신앙심과 성덕을 추구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겉으로 드러나는 신앙심과 성덕을 원하고 열망합니다.”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가 바로 이런 사람이고 제가 이러하지 않습니까?
이어서 프란치스코는 성령에 이끌리는 사람에 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주님의 영은 육이 혹독한 단련과 모욕을 당하기를 원하며,
천한 것으로 여겨지고 멸시받고 수치당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겸손과 인내, 그리고 순수하고 단순하며 참된 평화를 얻도록 힘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항상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신성한 두려움과
신성한 지혜와 신성한 사람을 얻기를 갈망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얘기하는 성령의 열매가 이러하지 않습니까?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그런데 육에 이끌리는 사람과 영에 이끌리는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저를 돌아보면 어떤 때의 저는 지극히 육적이고, 어떤 때의 저는 영적입니다.
어떤 때의 저는 사랑과 선의와 호의를 가지고 있고,
어떤 때의 저는 미움과 분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에 항구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육의 영에 사로잡히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에 이끌리기도 하고, 육의 영에 이끌리기도 하는 건데.
아마 여러분도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와 헌신의 영을 끄지 말라”는
프란치스코의 권고를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기도의 영이 꺼지면 우리의 지향은 하느님께로 향하지 않고, 세상을 향할 것이며,
헌신의 영이 꺼지면 우리의 사랑은 이웃을 향하지 않고, 자신을 향할 것이며,
바오로 사도가 얘기하는 육의 행실, 곧 “불륜, 더러움, 방탕, 우상 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이 우리의 행실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신을 잃는다면 기도와 헌신의 영을 끄는 것이고,
우리가 정신을 차린다면 기도와 헌신의 영을 다시 불붙이는 것임을
다시 마음에 새기는 오늘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