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과 유다 사도가 같이 축일을 지내는 이유는 예수님의 친척이었다는 설과
둘이 같이 선교를 떠나 같이 순교했다는 설에 근거합니다.
둘 다 예수님의 친척이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 의미가 남다를 것입니다.
혈연의 인연에 매이거나 가두지 않고,
혈연의 인연을 넘어서 주님의 사도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혈연의 인연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들도 예언자는 고향에서 존경받을 수 없다고 하신 주님 말씀대로였을 겁니다.
자기의 형제인 예수가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것은 믿기 어려웠을 겁니다.
시몬이 이스라엘의 독립운동에 가담했던 사람임을 감안 할 때
사도가 된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한 독립투사 되거나
형제라는 연줄을 이용하여 예수가 왕이 된 이스라엘의 왕국의
일개 신하가 되려고 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유다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고
어쩌면 시몬과 상의하고 같이 주님을 따르기 시작했을 텐데
이러한 인간적인 연줄을 끊은 것은 그들이 아니었을 겁니다.
하느님께서 끊으신 것이고,
주님께서 그들의 바람이나 생각과 다른 길을 가심으로 끊긴 것입니다.
두 사도뿐이 아니겠지만,
주님께서 허망하게 돌아가심으로써 닭 쫓던 개처럼 되어 버린 것이고,
이때 두 분은 생각했을 것이고, 선택해야만 했을 겁니다.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과 친척들에게 예수를 따랐는데 이렇게 됐다고
패잔병의 보고를 하고 고향에 눌러살 것인가?
아니면 다른 제자들처럼 예루살렘에 남아있을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두 분은 다른 제자들처럼 엉거주춤 예루살렘에 남아있었고
그다음 얘기는 우리가 다 아는 대로 성령을 받고 사도로 거듭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주님의 두 형제가 같이 육신의 형제에서 주님의 사도로 바뀌고,
같이 주님의 사도로 페르시아까지 선교한 것을 보며
이런 바뀜에 대해서 묵상합니다.
혈연血緣에서 영연靈緣으로의 바뀜
인연人緣에서 신연神緣으로의 바뀜
물론 이런 말은 없고, 제가 만들어낸 말이지만
그 뜻은 혈족적이고 인간적인 인연因緣이
신적이고 영적인 인연으로 바뀌는 겁니다.
그리고 두 분을 보면서
우리 인연들이 어떻게 맺어졌건 간에
우리의 인연을 모두 이렇게 바꾸는 겁니다.
지금까지 형제의 인연으로 살아왔다면 이제 같이 주님의 사도로 사는 것.
지금까지 부부의 인연으로 살아왔다면 이제 같이 주님 선포자가 되는 것.
지금까지 친구로 살아왔다면 같이 하느님께로 가는 도반이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