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말씀 가운데 그 뜻이 무엇인지 헷갈리는 것이 바로 목숨 얘기입니다.
오늘 복음에 바로 그 말씀이 나옵니다.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루카 17, 33)
그리고 복음의 다른 곳에선 주님 때문에, 또는 주님과 주님의 복음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으면 목숨을 얻게 된다고 하는데, 오늘 복음에선
주님 때문에나 복음 때문에가 빠져서 더 헷갈립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 24)
주님 때문에 목숨을 잃으면 목숨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은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쳤으니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실 거라는 말씀으로
우리는 이해할 수 있고 그래서 이 말씀은 이해하기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 목숨을 내가 지키는 것은, 힘도 없는 내가 내 목숨 지키려다 뺏기지만,
주님을 위해 내 목숨을 바치는 것은, 힘세신 주님께 맡기기에
뺏기지 않고 보존할 수 있다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으니 역시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주님께 바치면
사랑으로 주님께서 주신다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다른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특히 주님께서 오시는 날 곧 종말의 날 얘기이니
종말의 때에 현세의 목숨을 붙들고 아등바등 애쓰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붙들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니 잃게 되겠지요.
이는 마치 밧줄이 두 개인 경우와 같습니다.
하나는 썩은 밧줄이고 다른 하나는 튼튼한 밧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지금 잡고 있는 밧줄은 썩은 밧줄이고,
튼튼한 밧줄은 내가 지금 잡고 있는 밧줄을 놔야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폐암 말기의 저를 상상합니다.
지금은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때이고
영원한 생명을 주십사고 생명의 주님께 청해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제가 곧 끊어질 썩은 동아줄을 붙들고 연명하려고 애쓰느라
주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의 줄을 붙잡지 않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 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