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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7주 금요일- 사랑은 보물과 같기에

by 당쇠 posted Jun 1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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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저는 사랑 고백을 한 적이 없습니다.
연인에게 사랑 고백을 한 적이 없다는 뜻만이 아닙니다.
연인에게나 누구에게나 사랑 고백을 한 적이 없다는 얘깁니다.
안 한 건지, 못한 건지 모르지만
아무튼 사랑 고백을 한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사랑 고백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저는
불행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사랑이 메말라 고백한 적이 없다면 틀림없이 불행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지 않지만
용기가 없거나 쑥스러워서 고백하지 못했다면
불행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사랑 고백을 한 적이 없는 것은
사랑이 메말라서도 용기가 없어서도 쑥스러워서도 아닙니다.

저에게 사랑은 보물입니다.
보물은 함부로 내보여서는 안 되고,
보물은 막 줘서도 안 되는 것이지요.
쉽게 고백하는 사랑은 쉽게 배반할 것입니다.
베드로도 쉽게 고백을 했다가
쉽게, 아니 아주 어처구니없게도 세 번이나 배반을 했지 않습니까?

그러니 입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것보다는 눈으로 고백하는 것이 낫고,
눈으로 고백하는 것보다는 행동으로 고백하는 것이 나으며,
행동으로 고백하는 것보단 삶과 존재로 고백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언제 입으로 사랑 고백을 하시던가요?
하느님의 사랑 고백은 존재, 곧 예수 그리스도였잖습니까?

하느님을 들먹일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언제 말로 사랑한다고 하시던가요?
밥을 차려주는 것이 그분의 사랑 고백이고,
이불을 여며주시는 것이 그분의 사랑 고백이고,
걱정해주시는 것이 그분의 사랑 고백이잖습니까?

이런 사랑 고백을 몰라보는 사람에게는
아예 사랑을 고백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얕은 사랑 고백을 바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사랑하는지 묻는 것은 어떤 뜻입니까?

베드로가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은 아신다.”고 얘기하듯
주님께서는 사랑을 몰라보기에 물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물으시는 것이 아니라 촉구하시는 것이고
사랑의 고백을 들으시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실천을 명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하고
입으로 냉큼 얘기 하고는 닭이 세 번 울기도 전에 배반하지 말고
이제는 스스로 어디 갈 수 없을 정도로 주님 사랑에 매이고
진짜 목숨을 내놓음으로써
사랑을 고백하라고 촉구하시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촉구하고 명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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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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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지금 2011.06.10 13:30:08
    사랑한다는 말도 잘하고 애살이 많아 예쁜것 보면
    감탄도 잘하는대 엄마의 표현없는 사랑은
    하느님의 묵묵한 사랑이었읍니다
    오늘 진정한 사랑을 다시 생각하는 하루입니다
  • ?
    홈페이지 소화데레사 2011.06.10 13:30:08
    신부님의 강론 말씀을 읽으니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입으로만 떠드는 얕은 사랑에서 이제는 벗어나
    행동과 삶과 존재로 드러나는 성숙한 사랑을 고백하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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