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주님의 오심을 예비하는 사람 가운데서
세례자 요한을 낳아 줄 즈카르야와 그의 아내가 등장합니다.
이 둘은 삼손의 부모와 같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신세인데
오늘 즈카르야는 아이가 생길 거라는 천사의 말을 듣습니다.
그런데 천사의 말이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입니다.
그러니까 즈카르야가 아이를 달라고 빌었다는 얘기인데
이것이 무슨 뜻인지 생각게 합니다.
자기 아내가 돌계집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얘기인지,
젊었을 때의 청원이 이제 받아들여졌다는 얘기인지,
아니면 늘그막에도 아이를 달라고 빌었다는 얘기인지.
돌계집이라는 것을 알고도 아이를 달라고 했다면
진짜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라 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도 늘그막에 청했다면 정말 대단합니다.
그런데 뒤에 보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의심합니다.
그러므로 즈카르야의 청원은 아내가 돌계집인 줄 모르고
청한 것이고, 젊었을 때 청한 것이 거의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탄생이 733년 전 아하즈에게 한 약속이 이루어진 것처럼
요한의 탄생은 즈카르야의 오랜 소원이 뒤늦게 이루어진 겁니다.
이제 다음으로 생각게 되는 것은, 요한의 탄생이 즈카르야의 청원의 결과인지,
하느님의 앞선 계획 그러니까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의한 것인지, 그 점입니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요한의 탄생은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의한 것이지,
한낱 즈카르야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한 게 아니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의 불임은 하느님 구원계획의 일환이었고,
하느님께서는 즈카르야의 인간적인 소망도 구원의 기회로 삼으신 겁니다.
개인의 소망을 인류 구원의 기회로 삼으시는 하느님을 찬양하는 오늘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