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공현 대축일을 앞두고 오늘 복음은 주님께서 첫 기적을 일으키는 내용입니다.
왜 이 복음을 우리 교회는 공현 대축일 바로 전날 듣는 것일까요?
그것은 주님 공현이 세 가지를 기념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 세례,
동방박사들에게 나타내 보이심,
그리고 카나 촌의 첫 기적이지요.
공현 대축일인 내일은 동방박사들에게 당신을 나타내 보이심을 볼 것이고,
그다음 주는 주님께서 세례받으심을 기념하는 세례 축일을 지낼 것이며,
전날인 오늘은 카나 촌의 첫 기적을 기념하는 것이 공현 전례의 짜임새입니다.
여기서 아버지 하느님께 순종하여 이 세상에 오신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는 어머니 마리아께 순종하여 기적을 일으키시는데
하느님의 말씀이신 분께서 마리아로 대표되는 인간의 말에 순종하여
인간의 요청을 받아들이시는 것이고 달리 말하면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 주님께서 이제 인간의 뜻에 순종하시는 겁니다.
이런 주님을 보면서 주님과 우리 사이에 누가 더 많이 순종하는지 생각게 됩니다.
이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누가 더 많이 순종하는지와 비슷할 겁니다.
얼핏 생각하면 자식이 부모에게 더 많이 순종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부모가 더 많이 자식에게 순종합니다.
세상에서는 권력이 있는 사람에게 힘없는 사람이 순종하지만
사랑의 세계에서는 사랑이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이 순종하고,
자식이 부모의 뜻을 더 받들기보다
사랑이 더 많은 부모가 자식의 요구를 다 들어주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어차피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사랑은 많은 사람에게서 적은 사람에게 가며,
청원도 사랑이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의 청원을 들어주고,
순종도 사랑이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에게 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우리만 하느님께 순종한다고 볼멘소리하지 말 것이며,
그러나 어차피 청원할지라도 금기와 정도만은 지킬 것입니다.
금기와 정도?
예, 청원 기도를 바칠 때 기도를 가르쳐주신 주님의 말씀대로
나의 뜻을 들어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그리고 우리 안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요한이 서간에서 얘기하는 청원 기도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 대해서 무슨 하나 마나 한 얘기냐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도 내 뜻에 맞는 것을 청하면 들어주니 말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그럴지라도 우리는 이 당연한 이치를 자주 까먹고
하느님께 억지를 부리며 청원하는데,
이것은 마치 철부지 어린애가 엄마의 마음 약한 사랑을 악용하여
청하지 말아야 할 것 그러나 원하는 것을 달라고 떼를 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청원 기도의 정신이랄까 금기랄까 정도를 우리는 지켜야겠습니다.
그것은 떼쓰지 않기,
하느님 사랑을 악용하지 않기,
하느님 사랑을 믿고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