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와 복음의 공통 주제는 생명의 선택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생명을 선택하는 삶일지 얘기합니다.
그 방법에 대해 신명기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놓는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느님의 계명을 듣고,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길을 따라 걷고,
그분의 계명과 규정과 법규들을 지키면, 너희가 살고 번성할 것이다.”
하느님의 명령인 계명을 지키면 생명을 얻게 되고 행복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중요 단어를 나열하면
계명-생명-행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제 생각에 여기에 순명이라는 말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계명-순명-생명-행복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자주 얘기하는 바이지만
무릇 모든 생명은 창세기 1장의 얘기대로
생기라는 명령에 순명하였기에 생명이 된 것들입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느님께서 생기라고 명령하시자 그대로 되었다고 하고,
그걸 보시고 좋아하셨다고 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생기라는 명령에 순명한 것이 생명 맞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탄생 자체가 하느님 명령에 순명한 결과이니
생명을 계속 살 수 있는 것도 하느님 명령에 달렸다는 것이
신명기의 가르침이고 구약성경이 내내 가르치는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의 명령은 죽으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생기라는 명령이고 제발 살라는 명령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명령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누구보고 하라 마라 하느냐’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아무리 좋은 것도 명령조로 얘기하면 싫어하고,
부탁하면 하려고 했던 것도 명령조면 하기 싫어집니다.
그런데 미성숙한 사람처럼 그렇게 반항하면 어떻게 될까요?
나이를 먹으면 사태를 파악하고 굽힐 줄 알지만
젊었을 때는 젊은 혈기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대들 듯
살라는 명령도 명령이니 따르기 싫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의사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성숙하고 현명하다면 생명 앞에서는 겸손해야 합니다.
의사의 명령에 고집부리지 말고 겸손해야 하듯
하느님 명령에는 더더욱 겸손해야 하고 순명해야 합니다.
의사의 명령은 잘 들으면서 하느님 명령을 듣지 않는다면 말이 안 되겠지요.
오늘 복음에서도 주님께서는 생명의 길을 가르치십니다.
살려면 당신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당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 대로
당신을 따르면 진리의 길을 걷고 생명에 이를 것이라고 하십니다.
길이신 주님을 따라 가면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가기 때문이니
생명의 길이요 생명의 길잡이신 당신을 잘 따르면 된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신명기의 마지막 말씀을 마음에 새깁시다.
“그분께 매달려야 한다. 주님은 너희의 생명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