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저희의 부서진 영혼과 겸손해진 정신을 보시어
저희를 숫양과 황소의 번제물로, 수만 마리의 살진 양으로 받아 주소서.”
몇 년 전부터인지 모르지만, 저는 아자르야의 이 기도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점차 부서진 영혼과 겸손해진 정신의 아자르야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저의 영혼과 정신이 아자르야처럼 부서지고 겸손해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론 이전의 저는 결코, 이런 존재가 아니었고
아직도 이런 존재와는 거리가 먼 저이며,
또 이렇게 되는 것이 두렵습니다.
이전의 저는 부서진 영혼이 아니라 부수는 영혼이었고,
겸손해진 정신이 아니라 교만하기가 하늘을 치달을 정도였습니다.
내 영혼이 부서져야 한다고 생각지 않고
다른 사람 특히 불의를 저지르는 인간들이 부서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교만한 저인 줄 알면서도 그 교만을 꺾을 수 없다고
제가 교만한 줄 아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겸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말로는 작은 형제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결코 작지도 낮지도 않고 사람들 위에 군림했기 때문입니다.
어려서부터 중요한 책임을 많이 맡다 보니 그리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저를 보는 것이 너무도 괴로웠습니다.
작은 형제인 제가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그렇지만 생각뿐 부서진 영혼과 겸손해진 정신의 제가 되지 못했습니다.
저 스스로 이렇게 되지 못하니 하느님께서 저를 부숴주십니다.
오늘 아자르야가 얘기하는 그대로입니다.
아자르야는 이스라엘의 지난날과 지금을 이렇게 얘기합니다.
“주님, 저희는 저희의 죄 때문에 온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백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저희에게는 제후도 예언자도 지도자도 없고
번제물도 예물도 분향도 없으며 제물을 바쳐 자비를 얻을 곳도 없습니다.”
죄 때문에, 있어야 할 것들 그러니까
백성을 다스릴 지도자, 바쳐야 할 제물, 제물을 바칠 성전이 하나도 없게 되었는데,
그것은 겉으로 보면 바빌론 임금의 침략으로 인한 것이지만,
신실한 신앙의 눈으로 보면 하느님께서 바빌론 임금을 통해 그렇게 하신 것이지요.
그래서 아자르야와 청년들은 불가마 속에서 죽어가면서도
바빌론 임금 앞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아니 다른 번제물이 아니라 지금 불에 타서 죽을 자기들을 번제물로 봉헌합니다.
자기들 대신 바칠 번제물들이 없으니 자기들이 번제물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내게 아무것도 없고 아무도 없게 되었을 때
영혼과 정신이 부서지고 겸손해지고,
우리는 그것들 앞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 이렇게 온전히 또 진실하게 있게 됩니다.
그리고 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번제물이나 예물 대신 자기의 부서진 영혼과 겸손해진 정신을 바치는데
이것이 오히려 하느님께서 더 기꺼워하시는 번제물과 예물입니다.
이제 갈수록 힘도 없어지고 건강도 잃게 되었을 때
저도 그리고 여러분도 오히려 더 하느님 앞에 온전히 있게 되길 빌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