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당신이 아버지와 하나라고 말씀하신 것을
유다인들은 신성 모독으로 들었습니다.
예수가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생각해서
예수가 한 좋은 일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 일들은
예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위한 것이며
더 나아가 하느님께서 예수에게 맡기신 일로
그 일로
예수가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으며
하느님과 예수가 일치된 존재임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예수가 하는 일을 잘 받아들이면
예수가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예수가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처럼 표현하는 말에
이미 기분이 상했고
그래서 아무 것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그들은 유배라는 힘든 시간을 거쳐
유일신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고집은
그들의 눈을 가려
상황을 이성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감정에 싸이면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종종 실수를 하곤 합니다.
실수를 하고 나서
감정이 없으면 실수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감정을 차단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감정은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생기기에
없애려고 해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감정을 바라보지 않거나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할 뿐입니다.
그 과정에서 감정은 내 안에 쌓이고
나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바뀌어 갑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모습 가운데 하나는
완고함입니다.
내 안에 감정이 많이 쌓여 있을수록
나는 다른 사람과 대화하기 보다는
내 뜻대로 모든 것을 이루려고 합니다.
유다인들이 예수에게
신성 모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정당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즉 우리가 감정을 갖게 되는 상황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게 내 감정을 스스로 인정해 줄 때
그 감정을 바라볼 수 있고
그 감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감정을 눌러서
문제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 보다는
감정을 표현하면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